얼마 전의 고위 공직자 후보 청문회를 접하고 여러 생각이 든 것은 누구에게나 비슷할 것 같다. 우선 어쩌면 그런 위치까지 오르게 된 것일까 하는 가벼운 부러움과 시샘 같은 것이 있겠고, 다른 한편으로는 어쩌면 저리도 인생행적이 엇비슷할까 하는 경탄일 것이다. 어쨌든 어려운 과정을 무사히 통과한 당사자들은 용케도 소나기를 잘 피했구나 하면서 안도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함에도 씁쓸한 느낌을 떨칠 수 없는 것은 이번 일이 다시금 우리 사회에 만연한 윤리의식의 부재와 도덕 불감증의 일면을 확인하는 듯하기 때문이다.
무릇 자본주의는 그 이름이 내포하듯 자본이 주가 되는 주의임은 분명하다. 산업혁명 이후 놀라운 생산력의 증대는 자본의 축적과 부의 집중으로 나타났고, 그 결과 빈부격차가 커지고 상대적으로 노동자의 삶이 피폐의 늪을 헤매게 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는 당연히 새로운 사회에의 희구로 이어지고 사회주의의 출현도 이런 맥락에서 논리적 귀결이라고 할 수도 있다. 더불어 자본주의 안에서도 자성과 개혁의 목소리가 커진 것도 초기 자본주의의 모습에서 유추 가능하다.
원래 원시 기독교는 금욕주의로 점철되었고 이는 근대에 이르기까지 서구 사회의 주된 이념적 원천이었으나, 산업혁명을 겪으면서 일정한 수정이 이루어진 것은 자본주의의 원활한 지속을 위해서는 불가피했던 측면이라고 하겠다. 금욕주의의 수정 흐름에서는 칼뱅주의가 선도하였으나, 이를 이론적으로 뒷받침한 것은 막스 베버 등을 위시한 일부 학자들의 노력에 힘입은바 크다. 막스 베버는 애초에는 강단 사회주의자였으나 이후 자본주의의 기초 논리를 만드는 데 심혈을 기울인 바 있다. 그가 쓴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1905)은 어쩌면 자본주의의 경전이라고 할 만한데, 이는 논리적 근거가 박약했던 자본주의에 이론적 토대를 제공하였고, 이른바 그가 해석한 직업(Beruf) 의식 역시 하느님의 소명으로 일컬어 자본주의적 삶에 논리적 기초를 닦았다고 하겠다. 이처럼 자본주의는 이윤추구와 경쟁으로 대변되기에 자칫하면 이전투구의 장이 되어 천민성이 두드러질 소지를 내재하고 있기에 이를 차단하기 위한 작업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한국에 자본주의가 도입된 지도 꽤 되었으나 이의 윤리적, 도덕적 기초를 다지는 작업은 그다지 많지 않았던바, 우리 사회 곳곳에서 연출되는 윤리의식의 부재는 어쩌면 자연스런 현상이라 해도 틀리지는 않을 성싶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도 막스 베버류와는 다를지라도 여러 가지 삶의 지침들이 나름대로 없지 않았으니, 그 중 대표적인 것을 들자면 '염치'라는 덕목으로 이는 선비정신의 표상에 다름 아니었다. 물론 오늘의 한국 사회에서 염치를 지나치게 내세우면 행복한(?) 삶을 꾸리는 데 장애가 될 수도 있겠지만, 이 덕목은 오래전부터 면면히 이어 온 우리 삶의 지침이 되었던 것은 분명하다.
서구 사회를 지탱해 온 것이 소명의식에 입각한 윤리적 삶이 그 기초의 하나였음을 되새긴다면 우리에게도 무엇이 요구되는지는 스스로 자명해진다. 결국 윤리의식과 도덕 감정은 시대를 초월하는 덕목이자 건강한 삶을 유지시키는 기본 요소임을 일깨우고 싶다.
김한규(계명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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