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 쇼펜하우어는 선배 헤겔에 지고 싶지 않아 대학 강의시간을 같은 시간에 배정하도록 했다. 그러나 학생들은 헤겔에게만 몰렸고 쇼펜하우어는 파리만 날렸다. 10년이 지나도 헤겔을 따라갈 수 없자 그는 헤겔을 향해 독설(毒舌)을 쏟아냈다. "헤겔은 천박하고 우둔하며, 메스껍고 무식한 사기꾼이다. 그런데도 그의 추종자들은 마치 불멸의 진리나 되는 것처럼 나발을 불어대고 있다." 헤겔이 세상을 떠나자 쇼펜하우어는 기르는 개에게 헤겔이란 이름을 붙이기까지 했다.
인간에 대해 비관적 견해를 지녔던 쇼펜하우어는 인간을 향해서도 독설을 퍼부었다. 파리가 태어나는 것은 거미에게 잡아먹히기 위해서이며 인간이 태어나는 것은 괴로움의 노예가 되기 위해서라는 말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현재만이 유일한 진실이며 현실이다. 과거에 대한 후회나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현재를 우울하게 만드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란 말도 했다. 삶을 냉정하게 통찰하되 현실에서 행복을 찾아내란 예리한 시선도 놓치지 않은 것이다.
방랑시인 김삿갓도 독설의 달인이었다. 겨울날 그가 시골 서당에 찾아가 재워주기를 청했더니 초라한 행색을 본 훈장은 미친 개 취급을 하며 내쫓는다. 그는 '서당내조지(書堂來早知) 방중개존물(房中皆尊物) 생도제미십(生徒諸未十) 선생내불알(先生來不謁)'이란 한시 한 수를 서당 벽에 써 붙이고 나온다. 서당을 일찍부터 알고 왔는데/ 방안엔 모두 높은 분들 뿐이고/ 학생은 모두 열 명도 안 되는데/ 선생은 찾아와도 보지도 않네란 뜻이었다. 훈장도 시를 보고 웃음 지었을지 모를 일이다.
독설이 난무하는 시절이다. 연예인들은 방송에서 누가 더 독한 얘기를 하나 치열하게 경쟁을 한다. 동료에게 면박을 주거나 성형수술, 이성 교제, 침실 이야기 같은 폭로성 독설도 다반사다. 욕설을 비롯한 막말을 하는 연예인도 한둘이 아니다. 이른바 논객이란 사람들까지 험하고 독한 말을 내뱉는다. 상대의 가슴을 후벼 파고 도려내는 말을 경쟁하듯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 강마에는 독설을 했지만 거기엔 사람에 대한 애정과 진실이 배어 있었다. 그래서 깊은 울림을 주는 것은 물론 사람을 한 단계 더 성숙시키는 힘이 됐던 것이다. 철학이나 애정은 고사하고 해학'신선함마저 없는 독설이 판치는 세상, 갈수록 인간이 독해지는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입맛이 쓰다.
이대현 논설위원 sk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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