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각료에 임명되는 이들이 하나같이 위장전입이나 병역문제, 부동산투기 등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을 보면서 마음이 착잡했던 이들이 많을 것이다. 문제는 유명대학 교수이자 존경받는 학자인 그들이 그것을 별로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식인의 몰락' '죽음'이란 단어가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경향신문 특별취재팀에서 펴낸 '민주화 20년, 지식인의 죽음'은 이런 시대적 문제의식에 맞춰 출간된 책이다. 지식인의 죽음이 거론되는 이유는 지식인에 대해 사회에서 기대하는 역할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이고, 지식인이 그러한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얘기도 된다. 과거 어느 시점과 비교하는 얘기도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지금 왜 지식인이 그러한 역할을 못하고 있느냐 따지고 들어가는 게 이 책의 목적이기도 하다.
지식인은 원래 정권으로부터 독립적인 존재여야 비판과 감시라는 본연의 역할을 다할 수 있다. 그런데 최근 20여년간 지식인이 권력에 직접 참가하는 경우가 무척 많았다. 선거가 있을 때마다 유력한 후보의 뒤에 줄을 서서 한 자리를 차지하려는 정치지식인들이 많았던 것이다.
대학교수, 언론인, 시민단체 관계자 등이 그들이다. 또 하나는 대학이 상업화해가면서 지식인들도 대열에서 한몫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대학 내에 벤처기업이 생기는 바람에 교수이면서 기업의 CEO가 되는 경우도 생기고, 많은 돈을 버는 교수도 생겼다. 대학 내에 은행, 대형소매점, 스포츠센터 등 상업기관들이 점점 더 많이 진출하고 있는 추세다. 이런 상황에서 지식인들이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적인 자세를 취하기가 점점 힘들어졌다. 또한 서구 학문 중심주의 및 의존도 지식인의 죽음을 부른 주요 요인으로 지목된다. 여기서 서구는 사실 미국을 의미한다. 서울대 사회과학대 교수 70명 중 61명, 즉 87%가 미국 박사다. 비단 서울대만의 사례는 아니고, 다른 주요 대학교수들의 미국 박사 비율도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 학문 편중 현상은 연구'방법론의 획일화, 학문적 종속, 미국적 가치관의 확산 등을 낳고 있다.
지식인이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경우 어떤 문제가 발생할까? 건전한 비판과 감시가 부재한 사회는 위험한 사회이다. 뭔가 잘못되고 있는데 아무도 잘못되고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면 그 사회는 어떻게 될까? 벌거벗은 임금님 이야기처럼 임금님이 터무니없는 행동을 하는 데도 모두 입을 닫고 있다면 그 사회는 정상적으로 기능하기 힘들다.
1980년대 중반에는 많은 대학생들이 한완상의 '민중과 지식인', 싸르트르의 '지식인을 위한 변명'을 읽고 지식인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생각했다. 부잣집 자식들은 자신이 물려받은 부유함에 대해 부끄럽게 여길 줄 알았고, 좋은 대학에 다니는 학생은 자신이 많은 혜택을 입은 것임을 알고 자신의 지식을 사회에 쓸모 있는 방향으로 써야겠다, 사회에 도움 되는 방식으로 살아야겠다는 일종의 채무의식을 갖곤 했다. 요즘은 이런 의식이 사라지고 있는데 상당히 위험한 징조이다.
대안은 없을까? 많은 이들이 다중지성, 대중지성에 주목하고 있다. 집단지성이라고도 불린다. 더 이상 지식을 대학이나 특정집단이 독점하는 시대는 지나갔다. 인터넷 사이트 곳곳에서 특정문제에 대한 전문지식을 가진 이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국제정세, 남북문제뿐 아니라 문화와 역사 등에 해박한 지식을 지닌 이들이 숱하게 많다.
지식의 곳간 창고가 다중에게 활짝 열려 원하는 이들은 누구나 그것을 이용할 수 있다. 이런 현상은 앞으로 더 광범위하게 일어날 것이다. 그러면 대학에서 지식을 갈고닦는 것을 본업으로 하는 이들의 사회에서의 역할과 발언권도 축소될 수밖에 없을 것이고, 대학은 취업준비를 위한 단순기관으로만 머물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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