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작은 숲 이야기

낙엽이 진다. 부엌 창으로 보이는 숲에도 가을이 깊다. 상록수와 낙엽수가 적당히 어우러진 작은 숲은 첼로의 저음 같은 깊은 울림을 전해 준다. 자연의 순리가 빚어낸 빛깔은 은은하고도 고혹적이다. 성긴 잎들 사이로 보이는 어둑한 공간이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저 나무들 너머로 광활한 숲이 펼쳐질 것 같다. 자동차 위에도 낙엽이 내려앉는다. 현대 문명의 상징인 자동차도 이 풍경 속에서만은 정물처럼 잘 어울린다. 나무에서 떨어지는 잎들의 낙하가 한량없이 가볍다. 저들은 알고 있다. 버려야 산다는 것을. 감미로운 색상의 노란 은행잎은 나비 같은 춤사위로 마지막 제의를 치른다.

아파트 단지 사이에 작은 숲이 있다. 다른 아파트 단지와 구분하기 위한 경계이다. 실은 그 나무들 사이에 철제 담장이 설치되어 있는데, 나무에 가려 보이지 않을 뿐이다. 철 담장을 기점으로 양쪽에 나무를 심었다. 나무가 자라 작은 숲을 이루자, 온갖 생명체가 자리잡기 시작했다. 숲에 깃들어 사는 새들의 지저귐 소리에 새벽잠이 깨기도 한다. 여름날, 숲에서 나오는 서늘하고도 청량한 바람은 상쾌하기 그지없다. 작은 숲에도 사계절이 오고 간다. 밝은 자갈색의 가을 숲은 철제 펜스의 존재를 다 덮고도 남는다. 숲이 없었더라면 가을의 빈자리를 무엇으로 위안 받겠는가.

영양 주실마을에는 마을 숲이 있다. 마을 숲은 옛사람의 풍수적 상상력이 낳은 문화적 산물이다. 마을의 지형적인 약점을 보완하려고 조성한 인위적인 장치가 마을 숲이다. 너무 승한 바람의 기운을 막거나 외부의 시선으로부터 마을을 적당히 가리기 위해 나무를 심은 것이다. 마을 숲은 숭배의 대상이기도 했다. 나무와 숲에도 인격을 부여한 겸손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숲은 곧 마을의 수호신이다. 그러기에 소중히 가꾸고 보호했다. 나무한테 공동체의 안녕을 빌기도 했다. 마을 숲은 자연을 제압하지 않고 더불어 조화롭게 살아가려 했던 선조들의 세계관이 잘 구현된 장소다.

탈영토의 시대다. 한국인의 땅에 대한 소유욕은 유별나다. 소유에 대한 집착과 욕망이 나와 타자 사이에 높은 벽을 쌓게 한 것이다. 벽이란 타자에 대한 배타적 경계다. 높다란 담장은 타인의 접근 금지를 표시한다. 관공서나 학교의 담장 허물기는 의미 있는 일이다. 너와 내가 소통하는 길을 튼 것이다. 유럽의 유서 깊은 도시에는 숲이 많다. 오래된 집들 사이에 자리한 짙푸른 녹색지대는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문화 유산이다. 숲은 공존을 지향한다. 굳이 경계의 표식이 필요하다면 낮은 생울타리 정도로 충분하지 않은가. 녹색 공간이 주는 중립의 편안함은 모든 경계를 뛰어넘게 만든다. 우리 아파트 작은 숲에 가을비가 촉촉이 내린다. 이 경 희대구 달서여성인력개발센터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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