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맛 향토음식의 산업화] (23)따로국밥

'국' 따로, '밥' 따로…잊을 수 없는 '大邱의 맛'

질그릇에 담아낸 뜨거운 따로국밥
질그릇에 담아낸 뜨거운 따로국밥
선지 육개장
선지 육개장
국일 따로국밥에서 25년째 국을 끓이고 있는 김봉화(80) 주방장
국일 따로국밥에서 25년째 국을 끓이고 있는 김봉화(80) 주방장
점심을 먹기 위해 들른 회사원들이
점심을 먹기 위해 들른 회사원들이 '역시 국밥은 따로국밥이야!'를 외치고 있다

지난 10월 대구를 방문한 캐서린 스티븐스 주한 미국대사가 6·25 참전용사들과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들른 곳은 '따로국밥집'이었다. 스티븐스 대사는 주문한 따로국밥을 처음 접하고는 "참, 맛있게 보이네요. 대구 음식은 다소 매운 면이 있다죠" 하면서 국 한 그릇을 깨끗이 비우고는 더 달라 해서 먹었다. 따로국밥이 지역에서 바깥 세상으로 알려지는 순간이었다.

밥과 국을 말지 않고 따로 차려낸다는 뜻에서 생겨난 따로국밥. 따로국밥에 내놓는 국은 사골을 곤 육수에 소고기(양지머리나 사태)와 무, 대파를 숭숭 썰어 넣은 다음 고춧가루와 다진 마늘 등으로 양념을 해 끓인 국이다. 오랜 시간 곰국 고듯이 끓이면 고기살은 물러지고, 파와 무는 단맛이 나며 흐무러지도록 연해진다. 보기에는 벌겋게 맵게 보이지만 국물 맛은 얼큰하면서도 담백해 뒷맛이 개운하다. 또 특유의 단맛으로 입에 착착 달라붙고 속도 훈훈하게 풀어준다. 대구가 고향인 사람들 중 오랜 세월 다른 지역에 있다가 모처럼 대구에 들르기라도 하면 따로국밥을 챙겨 먹고는 연방 '이 맛이야~'라며 감탄을 한다.

◆따로국밥은 6·25의 히트 메뉴

1946년 문을 연 따로국밥의 원조인 국일 따로국밥(현재 중구 전동)은 원래 한일극장 근처에서 시작했다. 국일 역시 처음에는 국 따로 밥 따로가 아닌 국에 밥을 만 그냥 국밥을 내놓았다. 몇 년 뒤 6·25 전쟁이 터졌다. 당시 국립극장으로 변한 한일극장엔 연일 유랑극단 배우들로 북적댔다. 배우들은 여름에는 교동시장 내 강산면옥 등으로 갔지만 추운 겨울철에는 근처에 있는 국일을 찾아 따뜻한 국밥 한 그릇으로 식사를 해결했다.

그런데 전국의 각계각층 피란민들이 몰려들면서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다. 국에다 밥을 말아서 내놓은 국밥을 문제 삼았기 때문. 식성이 까다로운 한 여배우는 국밥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킨다며 주문할 때 '국과 밥을 따로 달라'고 했고, 갓을 쓴 어떤 사람은 '이게 상놈들이나 먹는 국이지…' 하면서 나무랐다. 식당 직원들은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손님들로부터 메뉴를 주문 받은 뒤 음식을 내놓았다.

여기서 '국 따로 밥 따로'인 '따로국밥'이 탄생했다. 그 후 국일은 따로국밥 본향이 됐고, 자연 대구식 육개장을 상징하는 고유명사가 됐다. 이렇듯 따로국밥은 조리법이 아니라 먹는 방식에 따라 생겨난 메뉴다.

◆가짓수도 다양한 따로국밥

전주 비빔밥과 콩나물 국밥 등은 조리법이 비교적 통일돼 있다. 어디서 먹어도 그 맛이다. 하지만 대구 따로국밥은 제각각이다. 식당마다 식 재료가 다르기 때문이다. 한 식당은 스스로 따로 국밥집이라고 불리는 걸 원치 않고 그냥 '대구 육개장집'으로 불리길 원한다.

따로국밥에는 몇 가지 종류가 있다. 선지가 들어가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두고 육개장식과 선지 육개장식, 우거지 선짓국식 등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육개장식은 사골을 우려낸 육수에 소고기(양지머리 또는 사태)와 무, 파 등을 넣고 끓인 국이다. 소고기 국과 비슷하다. 한땐 대구식 육개장이 '대구탕'(大邱·代狗湯)으로 불리기도 한 것을 보면 개고기 대용의 소고기국쯤으로 보면 된다. 선지 육개장식은 여기에 선지가 들어가는 점에서 다르다. 우거지 선짓국식은 무와 파 대신 우거지가 들어간다. 그래서 국맛이 제각각 다른 특징을 지니고 있다. 따로국밥에는 배추김치와 깍두기가 공통으로 나오고, 부추와 파김무침 등 곁반찬이 식당마다 다르게 올라간다.

대구시는 지난 1997년 시내 따로국밥 전문 식당 중 6곳을 국밥 전문 향토음식점으로 선정했다.

◆표준화된 레시피, 메뉴 개발 필요

비빔밥은 레시피를 표준화하기가 쉽다. 지역이나 손맛이 달라도 맛이 별 차이가 없어 항공 기내식으로도 채택됐다. 국처럼 솥에 끓이는 과정이 필요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은 제약 조건이 많다. 요리를 하는 사람에 따라 맛이 다르고, 다른 곳으로 가져가면 맛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원조 조리사가 요리법을 아무리 잘 가르쳐도 비슷한 맛을 낼 수는 있어도 원래 '그 맛'을 내기란 어렵다. 특히 원조 조리사가 타계하고 나면 국 맛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국맛의 미묘한 차이, 단순히 한끼 식사쯤으로 치부하면 별 문제는 아니지만 본연의 국맛을 원하는 식도락가에게는 중요한 요소다.

따로국밥을 자주 찾는 식도락가들은 국맛이 예전 국맛과 차이가 있다고 한다. 특히 나이 드신 어르신들 중 그 옛날 국을 먹어 본 사람일수록 '국맛이 예전 그 맛이 아니다'고 문제를 제기한다. 전문가들은 이는 손맛이 다른 이유도 있지만 일차적으로 제대로 된 식재료를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제대로 된 한우 양지머리와 사골, 무, 파 등을 사용해야 제대로 된 국맛을 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따로국밥용 파와 무를 전문적으로 재배하거나, 따로국밥 전용 소 방목지를 조성해 따로국밥 식당과 계약을 맺어 공급할 필요가 있다는 것.

또 표준 레시피와 함께 메뉴도 개발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메인 요리와 함께 입맛에 따라 '매운 맛' '순한 맛' '시원한 맛'이 나는 국도 내놓아야 한다는 것. 이와 함께 식당마다 비슷하게 나오는 곁반찬도 기호에 맞게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변화도 필요하지만 각 식당의 특수성을 인정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육개장식, 선지 육개장식, 우거지 선짓국식 등으로 특화시키면 되기 때문이다.

향토음식산업화 특별취재팀

최재수기자 biochoi@msnet.co.kr

김병구기자 kbg@msnet.co.kr

권동순기자 pinoky@msnet.co.kr

강병서기자 kbs@msnet.co.kr

엄재진기자 2000jin@msnet.co.kr

사진·프리랜서 강병두 pimnb@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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