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무늬만 가드레일, '추락 참사' 불렀다

경주 관광차 사고구간 급경사 불구 '방어력' 보강 안해

17일 오후 경주시 현곡면 남사재 관광버스 추락참사 현장 가드레일이 엿가락처럼 힘없이 널브러져 있다.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17일 오후 경주시 현곡면 남사재 관광버스 추락참사 현장 가드레일이 엿가락처럼 힘없이 널브러져 있다.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무용지물 가드레일(방호울타리)이 교통사고 피해를 키우고 있다. 차량을 방호해야 할 가드레일이 너무 쉽게 뚫려 후진국형 추락사고의 주범이 되고 있는 것이다.

17명이 숨진 경주 관광버스 참사 역시 엉성한 가드레일이 대형 추락 사고를 불렀다. 추락 구간은 양쪽이 급경사에다 굴곡까지 심해 사고 우려가 큰 곳이나 가드레일 강도가 약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또 대구경북 곳곳에는 가드레일조차 없거나, 설령 있다하더라도 관리·감독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위험한 도로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너무 쉽게 뚫리는 가드레일

17일 경주시 현곡면 남사재 관광버스 추락 현장. 폴리스 라인 너머로 엿가락처럼 휜 가드레일이 10여m나 뒤틀려 있다. 정상 주행경로를 벗어난 차량을 원래 진행 방향으로 돌려놓기 위한 가드레일이 제 역할을 못했다. 경찰은 "가드레일이 제 기능을 발휘해 버스가 30m 낭떠러지로 굴러 떨어지지 않았으면 인명 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었다"고 씁쓸해 했다.

사고 지점은 경주시 현곡면과 영천시 고경면을 잇는 지방도로(왕복 2차로). 굽이굽이 산길에다 경사가 급해 추락사고 위험이 크지만 경상북도종합건설사업소가 설치한 가드레일은 강도가 낮았다.

교통안전참여본부 변동섭(교통사고 감정사) 본부장은 "국토해양부 지침은 저수지, 강변, 낭떠러지로 굴러 떨어질 위험이 큰 구간은 가드레일 강도를 보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며 "그러나 국내 행정기관들은 사고 위험이 크더라도 제한속도 60km의 편도 1차로에는 관행처럼 강도가 떨어지는 가드레일을 설치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토해양부의 도로안전시설 설치 및 관리지침에 따르면 국내 가드레일 강도는 모두 7등급(SB1~SB7)으로 나뉜다. 가장 낮은 등급(SB1)의 가드레일은 시속 40km를 초과한 버스에도 쉽게 뚫리는 반면 5등급(SB5)은 80km 이하의 버스를 방호할 수 있다. 변 본부장은 "전문가에 의한 현장 중심의 체계적 가드레일 강도 점검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경상북도종합건설사업소는 "사고지점은 설계 속도가 40km이며 가드레일은 SB2등급으로 설치했다"며 "시속 50km 이하 차량은 막을 수 있는 견고한 가드레일"이라고 해명했다.

◆무늬만 방호 시설

경주 관광버스 참사 사고 지점은 영천시에서 경주시로 통하는 지름길로, 관광버스 통행이 잦은 곳이다. 그러나 이 구간에는 가드레일이 아예 없거나 깨지고 부서진 방호벽이 부지기수였다.

17일 영천시 고경면 청정리 국립호국원 앞에서 904번 지방국도를 타고 경주시 현곡면 사고지점까지 14km 구간을 차로 달렸다. 생애 마지막 여행이 된 고인들의 길을 그대로 따라갔다.

가드레일이나 콘크리트 방호벽은 드문드문 눈에 띄었고, 그나마 위험해 보였다. 두 세 곳에서는 30cm 높이 콘크리트 방호벽이 보기 흉하게 부서져 있었다. 오랜 기간 방치된 방호벽에는 까만 이끼가 돋아 있다. 게다가 수십년이 지난 방호벽들은 도로 안전 시설 규정조차 없는 '무늬만 방호 시설'이다.

가드레일은 설치 위치가 의아했다. 떨어질 곳이 전혀 없는 엉뚱한 곳엔 가드레일을 설치해 놓고 정작 사고 위험이 큰 낭떠러지 구간에는 아무런 안전 시설이 없다. 그러나 추락사고 위험이 큰 곳에 가드레일을 설치하지 않을 경우 대형 사고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2003년 20명의 목숨을 앗아간 봉화 청량산 관광버스 참사 역시 가드레일이 없어 발생한 추락 사고다.

◆관리·감독 없는 가드레일

가드레일에 대한 관리·감독 역시 소홀하기 짝이 없다. 행정기관들은 민원이 들어오거나 유지 보수가 필요한 곳이 파악되면 '그때그때' 고치는 형편이다.

가드레일 교통 사고가 ▷1997∼2007년 사이 총 5만241건 발생했고, 1만1천409명이나 숨졌다는 점 ▷가드레일 사고가 전체 대형교통사고의 약 14.1%를 차지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땜질 처방과 다름 아니다.

가드레일 설치 기준에 따르면 가드레일 받침대는 땅 속 165㎝까지 깊이 매몰해야 하고, 교량 접합부는 돌 부분과 가드레일 철이 볼트로 잘 연결되어야 한다.

그러나 지난해 말 교통안전참여본부가 경부고속도로와 국도 1호선을 점검한 결과 165cm까지 매몰해야 하는 받침대가 너무 얕게 묻혀 쉽게 흔들리거나, 접합부 연결이 불량한 가드레일이 넘쳐났다. 시민단체들은 가드레일에 대한 전체 점검 및 보수를 꾸준히 요구하고 있으나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상준기자 all4you@msnet.co.kr 임상준기자 new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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