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손에 가시를 들고
우 탁
한 손에 가시를 들고 또 한 손에 막대를 들고
늙는 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렸더니
백발(白髮)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한 손에는 가시를 들고, 또 다른 손에는 막대를 잡고서/ 늙어 가는 것을 가시로 막고, 나날이 늘어나는 흰 머리카락을 막대로 물리치려 했더니/ 백발이 먼저 나의 속셈을 알아차리고 지름길로 찾아 들더라"로 풀린다.
탄로가(嘆老歌) 즉, 늙어가는 것을 한탄하는 노래로 고려 우탁(禹倬·1263~1342)의 작품이다. 충선왕 때부터 충숙왕 때까지의 학자로 호는 백운(白雲), 단암(丹巖)을 썼다. 충렬왕 4년에 향공(鄕貢) 진사가 되고, 문과 급제 후 영해사록(寧海司錄)을 지냈다. 그때 고을에 팔령(八鈴)이라는 요사스런 사당이 있어 민심을 현혹시키므로 이를 부수어 바다에 띄워 버렸다는 일화가 전해온다.
또한 충선왕이 부왕의 후비 숙창원비(叔昌院妃)와 밀통하자, 흰옷을 입고 도끼를 들고 곧장 대궐로 들어가 직간하니 옆에 있던 신하들이 모두 두려워했고, 또한 왕이 심히 부끄럽게 여겼다고 한다. 원나라에서 처음으로 주역을 들여왔기 때문에 역동(易東)선생이라 일컬어지며, 성리학이 우리나라에 퍼지게 됨은 우탁으로부터 비롯되었다. 강직하고 어진 신하라 하여 현신(賢臣)으로 불렸다.
시조 형식이 정제되기 전인 여말에 창작된 작품이지만 음보율로 파악하면 정격의 시조다. 작자가 만년에 벼슬길에서 물러나 예안에서 후진을 가르치고 있었는데 어느 날 거울에 비친 자신의 흰머리를 보고 지은 노래라는 작시 동기까지 전해지고 있다. 이 같은 작자에 대한 소상한 기록들이 있는 것은 우탁이 현신이었고 이름난 학자였기 때문일 것이다.
이 작품은 무엇보다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갖는다. 이 세상 그 누구라도 늙어가는 것을 반가워할 사람 있겠는가. 요즘은 의술이 발달하여 늙어 보이는 것을 조금 젊어 보이게 할 수는 있다. 그렇지만 늙는 것 자체를 완전히 막아내지는 못한다.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에게는 생명이 다하는 날이 있다는 것, 그것을 인간이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오로지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하며 사는 일뿐이리라. 태어난 모든 사람들이 또 한 살의 나이를 먹어야 할 연말이다. 2009년이 또 그렇게 간다.
문무학 시조시인·경일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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