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성미의 책속 심리]금각사 미시마 유키오/웅진지식하우스

다음 달이면 숭례문이 불탄 지 2년째다. 한국인 심성의 표본과도 같았던 숭례문이 방화로 무너져 내리는 장면이 아직도 생생한 탓에 소설 금각사를 대하는 마음이 남다르다. 이 소설은 1950년에 있었던 일본의 금각사 방화사건을 바탕으로 하였다. '개인적 욕구를 위하여 사회를 희생시키는 악성행위'를 하고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방화범은 어떤 사람일까.

책은 어릴 때부터 말더듬이에다 몸이 약하고 내성적인 소년이 방화범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항상 따돌림을 당하던 소년은 늘 공상에 빠져 지냈다. 공상 속에서 자기를 업신여기는 친구나 교사를 처형하기도 하고, 좋아하는 여학생의 몸을 더듬었다. 어머니의 불륜, 아버지의 죽음은 세상에 대한 불신과 증오심을 증폭시키고 점점 세상으로 향한 마음의 문을 닫게 된다. 씻어낼 수 없는 열등감에 시달리던 소년이 과대적인 가짜 자아상을 만들어 낸다. 자신은 선택된 인간이며, 위대한 사명을 지닌 아이라고 굳게 믿는다. 가짜 자기를 내세울수록 현실과 멀어질 수밖에 없다. 자신의 과대성을 지켜내려고 안간힘을 쓰는 자기애성 성격이 형성되는 과정을 잘 보여준다.

자기애성 성격을 가진 사람은 얼음처럼 차갑고 쉽게 폭력을 사용한다. 금각사에 불을 지른 미조구치는 화염에 휩싸여 절간이 내려앉는 장면을 보면서, 유유히 담뱃불을 붙여 입에 문다. 방화도 모자라서 담뱃불까지 필요할 만큼 싸늘한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홀로코스트의 잔혹성을 연상시키는 섬뜩한 장면이다.

노벨상 후보에 두 번이나 오른 일본의 촉망받는 작가였던 미시마는 공개석상에서 하라키리(할복)를 실행하며 살육 잔치를 벌였다. 일본 최고의 명문가 출신이며 동경대 법대를 졸업하고 고위 공무원의 자리를 박차고 작가의 길로 들어섰던 미시마는 유달리 남성성에 집착하고, 도가 넘친 전지전능감에 빠져 있던 나르시시스트였다. 나르시시스트에겐 항상 음습한 피와 죽음의 냄새가 배어있다.

나르시시스트에는 무감각형과 과민형이 있다. 무감각형은 자신이 남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전혀 관심이 없고, 남의 말은 듣지 않고 자기 말만 하는 사람들이다. 미시마처럼 송신기만 있고 수신기는 없는 자들이다.

과민형은 수신기만 예민하게 발달되어 남의 비판에 흠집이 날까, 노심초사한다. 결벽증, 완벽주의자들이다. 수치감과 과시욕이 동시에 있기 때문이다. '설국'을 쓴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여기에 속한다.

미시마의 스승격이었던 가와바타는 미시마가 할복자살한 지 2년 뒤, 가스관을 물고 자살했다. 두 사람에게 '불과 죽음'은 중요한 화두였다. '설국'에서는 창고에 불이 나서 요코가 추락사하고, '금각사'에서는 절간에 불이 나서 문화재가 소실된다. 금각사 방화범 미조구치와 자살로 죽음의 미학을 보여주고자 한 미시마, 그리고 일본의 미를 위하여 노추를 버린 가와바타는 자기애성 성격의 소유자들이다.

마음과마음 정신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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