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화체육관광장관상 받은 변숙희 시안미술관장

다양한 전시'체험 프로그램…"서울서도 배우러 와요"

영천시 화산면 가상리에 있는 시안미술관은 대도시에 있는 여느 미술관처럼 뛰어난 접근성을 자랑하는 곳이 아니다. 초행길이라면 찾아가는 것 자체가 일이다. 하지만 늘 사람들로 붐빈다. 특히 주말이면 가족 나들이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어린이 체험프로그램이 마련돼 있고 잔디가 곱게 깔린 조각공원에서는 휴식과 함께 작품을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안미술관으로 가는 길에 만나는 그림 같은 저수지와 계절마다 바뀌는 농촌 풍경도 훌륭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영천을 미술 도시로 만든 원동력인 시안미술관은 폐교가 한 사람의 노력으로 훌륭한 문화공간으로 거듭난 과정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시안미술관에 들어서면 폐교의 흔적은 찾아보기 힘들다. 조각공원 한쪽에 추억의 신물처럼 자리 잡고 있는 정글짐이 과거 학교였음을 간접적으로 말해 줄 뿐 문화의 향기가 넘쳐 흐르다.

시안미술관을 영천의 떠오르는 아이콘으로 만든 주인공은 바로 변숙희(55'사진) 관장이다. 지난달 변 관장은 미술의 지역화와 소외계층에 문화'예술 향수권을 제공한 공로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받았다. 국가가 해야 할 일을 시골에 있는 사립미술관이 대신해 온 공적을 인정 받은 것이다. "모두 열심히 일을 한 결과입니다. 수상 대상자에 올랐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처음에는 반신반의했습니다. 저희 미술관보다 더 훌륭한 곳도 많기 때문입니다. 문화예술인으로 더 많은 기여를 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 기쁨니다."

수상 소식을 들었을 때 지난 세월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는 변 관장은 미술인이 아니라 방송인 출신이다. KBS대구방송총국에서 근무했던 그녀는 퇴직한 뒤 평소 관심이 많았던 미술품 컬렉션을 시작했다. 작품이 모일수록 그림을 함께 나눌 공간에 대한 욕심도 커져갔고 급기야 미술관을 열 결심까지 하게됐다. "비용을 줄이기 위해 폐교를 선택했습니다. 적당한 곳을 찾기 위해 경북에 있는 폐교는 거의 다 가봤지만 마음에 와 닿는 장소를 찾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노을이 지는 저녁 무렵 화산초교 가상분교를 방문했는데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거기에 반해 미술관 장소로 결정했습니다."

변 관장은 1999년 교육청으로부터 2년간 폐교를 임대해 시설 개조를 시작했다. 하지만 시설을 바꾸는데 많은 제약조건이 뛰따랐다. 할 수 없어 2002년 7억원을 들여 폐교를 사들인 후 2004년 미술관을 개관했다. 비용을 줄이려고 폐교를 선택했지만 미술관으로 리모델링하는 과정에 상상 이상으로 많은 돈이 들어갔다. 월급쟁이 하면서 모아 두었던 돈뿐 아니라 자신의 퇴직금과 남편 퇴직금까지 모두 쏟아부어야 했다. 취미로 서양화, 사군자, 서예 등을 배웠지만 미술관 운영에 전문지식이 필요할 것 같아 홍익대에 편입해 서양미술사 공부도 했다.

하지만 실제 미술관 운영은 녹록지 않았다. 가장 큰 걸림돌은 자금 문제였다. "가진 돈을 모두 투자한 것도 모자라 여기 저기서 돈을 끌어 넣었지만 마치 밑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 같았습니다. 견딜 재간이 없어 하루에도 몇번 미술관을 그만둘 생각을 했습니다. 좋은 의도로 시작했기 때문에 남들 보기에도 좋은 모습으로 떠나고 싶었습니다."

격무와 스트레스로 인해 변 관장은 병까지 얻어 큰 수술까지 했다. 하지만 쓰러지지 않고 오뚝이처럼 일어나 재정자립도를 높이는 방안을 찾기 시작했다. 그녀가 고민 끝에 찾은 해답은 바로 다양한 유료체험프로그램. 지나치게 상업적이지 않으면서 교육과 연계된 사업이라 미술관 재정자립도와 인지도를 높이는 동시에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기반이 어느 정도 다져지면서 지난해부터 미술관 운영에 조금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지금까지 우리 미술관에서 한 전시가 좋은 평가를 얻었고 문화예술프로그램도 인기가 좋아 더 이상 어려워지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시안미술관은 열악한 재정상태를 보이고 있는 우리나라 미술관이 나가야 할 하나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 성공사례로 서울에서 연구를 할 정도로 시안미술관은 짧은 기간 우리나라 미술관 역사에 깊은 인상을 남기고 있다. 돈만 되는 상업적 전시 대신 돈이 되지 않더라도 품격 높은 전시를 고집하고 어린이와 소외계층을 위한 교육프로그램과 지역 친화적 사업을 펼쳐온 변 관장의 노력 덕분이다.

그동안 변 관장은 국내외를 대표하는 미술계 저명인사들을 초빙한 국제미술컨퍼런스를 비롯해 시골 사립미술관에서 하기 힘든 일을 많이 했다. 지난해에는 어린이미술관도 개관했다. 체험을 통한 미술교육이 성장기 어린이들 인성계발에 미치는 영향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립미술관을 하고 있지만 미술의 공공성에 대한 부분도 놓치지 않으려는 변 관장의 의지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성공 여부를 떠나 늘 최선을 다하는 것이 변 관장을 움직이는 힘이다. 그녀는 최근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시안미술관을 중심으로 마을 전체를 미술관으로 꾸미는 일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마을 주민들과 위원회도 구성했습니다. 한번 찾아오면 1박 2일 머물면서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는 곳으로 만들 계획입니다."

변 관장은 미술관이 고통도 주었지만 더 많은 기쁨을 안겨주었기에 후회는 없다고 했다. 오히려 미술관 운영을 권하고 싶다는 것. "소득수준이 올라갈수록 미술수요는 다양해지고 넓어집니다. 재정 상태에 맞는 규모로 시작해 좋은 프로그램만 개발하면 성공적으로 운영할 수 있습니다."

신년 소망이 미술관의 재정적 안정이라는 그녀는 "힘이 닿는 한 좋은 전시와 프로그램으로 사회에 좀 더 많은 기여를 하는 것이 미술관장으로 해야 할 남은 목표"라고 말했다.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사진'안상호기자 shah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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