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트레킹에서 우연히 한 친구를 만났다. 그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0년을 넘게 직장생활을 하다가 어느 날 견딜 수 없는 외로움에 히말라야 트레킹을 결행(?)했노라고 웃으며 말했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지 못하는 무능력한 아버지 대신 두 동생의 공부를 떠맡아야 했던 그녀는 늘 세상에 순응하며 사는 어머니를 원망하고 또 원망했다고 했다.
"달아나고 싶었어요. 저를 옥죄고 있는 모든 것들로부터요."해서 어렵게 모은 적금을 깨고 무작정 네팔행 비행기에 올랐다는 그녀는 말했다. "이젠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아요."하루 8시간을 걷고 걸으며 고산병 증세로 숨이 턱에 차오르는 고통 속에서 그녀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그리고 두 동생들을 떠올렸고 그렇게 목 놓아 울었다고 말했다.
배운 것 없고 가진 것조차 없는 가난한 부모가 할 수 있는 것은 어쩌면 아무 것도 없을지 모른다. "처음에는 제가 아버지를 용서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하지만 다시 생각하니 제가 용서받아야 하는 것이었어요."이렇듯 가족은 용서란 이름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한국에서 다시 만난 그녀는 이제 가끔은 아버지와 소주잔을 기울이기도 한다며 환한 웃음을 지었다. '그림 속으로 들어온 가족의 얼굴들'이라는 부제가 붙은 『가족을 그리다』는 처음부터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다.
"살아오면서 가족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해 보거나 고민해 본 적이 거의 없었다"는 저자의 말은 이 책의 출발이 다소 딱딱한 학술적인 것임을 암시한다. 하지만 살다보면 가족이 커다란 버팀목이 되는 순간처럼 책의 중반부에 들어서면 그림에 나타난 가족의 얼굴이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특히 화가 박수근(朴壽根, 1914~ 1965)의 그림에 이르면 자신과 닮았던 그 시대의 어렵고 가난하지만 선했던 우리 가족을 만나게 된다. 작가 박완서(朴婉緖, 1931~)의 처녀작 나목(裸木)의 주인공 옥희도에 그려진 박수근은 6'25전쟁 이후에 힘겨웠던'근대화의 변두리에 남겨진 삶의 정경'만을 소재로 했다는 점에서 가족이라는 울타리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을 담고 있다.
오늘날, 가족의 해체라는 불행은 오히려 보다 근원적인 가족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완고한 가부장제가 퇴색하면서 마치 아버지라는 권력(?)의 중심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어머니나 혹은 경제력을 가진 존재가 대신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처음부터 가족이라는 공동체가 개인의 중심에서 출발하고 있다는 오랜 관습에서 기인한 것에 불과하다. 가족은 곧 집이며 고향이며 어머니이며 아버지이자 형제이다. 이제 곧 설이다. 고향집 마당에서 씻던 호미를 던지고 뛰어나오시던 우리 부모님에게 못난 자식은 더 이상 없지 않은가. 이 책을 읽는 내내 가족이란 이름 앞에 용서받지 못할 것이란 정녕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을 한다.
전태흥 여행작가 ㈜미래티엔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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