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뉴욕 뉴욕]최준용의 인턴십 다이어리-#18. 영화 보기

맨해튼 풍경 단골 '나만의 뉴욕' 경험

많은 사람들은 여행을 다닌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여행에 임하기에 앞서 자신이 여행할 도시나 지역을 공부하기도 하고, 때로는 해당 여행지에서 촬영된 영화를 보기도 한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뉴욕에 오기 전 시간을 쪼개가며 '가십걸''섹스 앤 더 시티'와 같은 TV 시리즈물은 물론 '뉴욕은 지금 사랑 중' '세렌디피티'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뉴욕의 가을' 등을 다시 한번 감상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 또한 카네기홀 공연을 다루면서 뉴욕이 배경으로 나오는 영화이다. 예전의 기억을 더듬어 가면서 영화 한편 한편 찾아서 보기도 하고, TV에서 상영 중인 미국 드라마를 시청하면서 나의 뉴욕에 대한 기대는 커져만 갔다. 특히 뉴욕의 상류층을 다룬 드라마 '가십걸'을 보면서 나는 막연하게나마 뉴욕에 가면 저런 화려한 생활을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에 차오르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정작 나의 뉴욕에서의 생활은 '슬럼독 밀리어네어'와 비슷했다고나 할까. '슬럼독 밀리어네어'는 인도 뭄바이에서 자말이 살아나가는 방식이 리얼하게 그려져 있다. 나의 뉴욕생활도 '가십걸'보다는 자말의 생활과 가까웠다고나 할까. 뉴욕의 살인적인 물가와 여러 가지 상황들은 나에게 화려하고 달콤한 경험보다는 씁쓸한 경험을 먼저 안겨주었다.

뉴욕 생활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친구들과의 여유 있고 멋있는 주말의 브런치. 나도 여러 번 시도해 보았다. 모름지기 브런치라 함은 아침을 굶고 오전 11~12시 사이에 먹는 식습관을 말한다. Breakfast와 Lunch의 합성어가 바로 Brunch이다. 나는 지인들과 함께 우아한 브런치를 즐기고자 아침을 굶고 오전 11시경, 스텐리파크 옆 5ave쯤 위치한 사라베스라는 브런치 식당에 들어갔다. 미리 리서치해둔 메뉴를 주문하고서 커피를 시킨다. 커피를 한잔 마시고 있노라면, 이윽고 고대하던 주문한 음식들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낸다.

오전 11시까지 기다리느라 배고픔에 지쳐서였을까. 우리들은 음식을 하나같이 허겁지겁 먹기 시작한다. 영화에서는 보통 1, 2시간씩 대화를 즐기며 우아하게 먹는 모습이었지만 우리들은 10분도 채 걸리지 않아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브런치를 먹어치웠다. 한꺼번에 음식을 해치우고 나니 갑자기 머쓱해졌다. 왜 우리는 영화 속 뉴요커들처럼 대화를 하면서 우아하게 음식을 즐기지 못하는가 하고 말이다. 게다가 음식의 양도 풍족하지 않았다.

그리고 영화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맨해튼의 풍경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멋진 빌딩에 산다. 하지만 그런 곳의 집세는 내가 사는 집세의 6개월치쯤 될 거다. 그래서 이것은 단번에 포기할 수 있었다.

영화 속 뉴요커들은 센트럴 파크에서 우아하게 조깅을 즐기면서 이성 뉴요커들과의 눈빛 교환을 하고 그것이 인연이 되어 아름다운 사랑을 시작하기 마련이다.

너무나 아름다운 센트럴 파크! 맨해튼의 허파라고도 불리는 이 센트럴 파크는 무진장 넓다. 이곳에서 운동을 즐기는 뉴요커들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조깅을 할 때 말과 견공들의 배설물을 조심해야 한다. 이로 인한 악취가 심할 뿐 아니라 실수로 밟기라도 하는 날이면…. 상상도 하기 싫은 일들이 펼쳐진다. 영화에는 이 배설물들은 비춰지지 않는다.

게다가 멋진 뉴요커들은 생각보다 찾기 쉽지 않다. 탄탄한 몸매에다 젊고 유능한 뉴요커들을 거리에서 쉽게 만날 수 있진 않다.

뉴욕에 대한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기 마련이지만, 뉴욕 나름의 재미를 하나하나 찾아나가는 것은 분명 흥미진진한 일이다. 한국과, 혹은 다른 나라와, 영화 속 주인공들과 비교하려 들지 말고 자신만의 뉴욕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가장 멋진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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