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가난(김수현·이현주·손병돈/한울)
1970년대 도심재개발로 살던 집이 철거된 난장이 가족의 비극을 다룬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고도성장과 개발의 이면에서 고통받는 빈민들의 삶을 보여준 탁월한 작품이다. 그로부터 30여년이 지난 2000년대 후반, 젊은 작가 김려령은 소설 『완득이』에서 난장이 가족이 우리 시대에 어떻게 살고 있는지 보여주었다. 아버지는 지방으로 일을 나가 오래 들어오지 않고, 어머니는 결혼이주여성으로 집을 나가 식당에서 일하며 살고 있다. 소년 완득이는 옥탑방에 홀로 남아 긴 시간을 외롭게 지낸다. 과거에는 함께 모여 살며 정신적'물질적 도움을 주고받았던 가난한 사람들이 도시의 옥탑방이나 지하방에 고립된 채 살아가고 있다. 예전에는 열심히 일하면 가난을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지만, 이제 그런 희망조차도 갖기 힘들어졌다. 가난은 더 깊이 스며들었고, 새로운 종류의 빈곤이 우리 사회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김수현 등 세 명의 저자가 쓴 『한국의 가난』은 현재 우리 사회의 빈곤문제에 대한 깊은 문제의식과 성찰, 나아가 극복방법을 아울러 고민하는 책이다. 개발도상국의 빈곤 문제를 다룬 책들이 사회과학 분야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동안, 우리나라의 빈곤 문제에 대해서는 연구와 고민이 부족했다는 것이 저자들의 문제의식이다. 이 책은 빈곤의 뜻과 쟁점에서 시작하여 빈곤이 왜 문제인지, 우리나라의 빈곤 실태가 어떠한지 차근차근 설명해나간다. 또한 가난한 노인들, 노숙인, 결혼이주여성, 탈북자 등 우리 사회의 가난한 사람들을 드러내 보여준다. 노인의 약 3분의 1이 가난하고 노숙인의 상당수가 누적된 가난과 소외를 경험한 이들이며, 결혼이주여성과 탈북자 등의 가난도 심각한 수준이라고 말한다. 이들이 가난한 이유는 게으르거나 무능력해서가 아니라, 노인이 되어 일할 수 없는 상태이거나 처음부터 출발선이 달랐기 때문이다. 가난한 부모를 만나고 교육받지 못해서 가난하기 쉬운 조건에 놓여 있었거나, 주위에 기댈 언덕이 없어 사업에 실패하거나, 실직 등 어려운 일에 부닥쳤을 때 다시 일어서기 힘들었다.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려고 애쓰지만 도무지 가난에서 벗어나기 힘든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게다가 노동시장의 유연화와 산업구조의 재편 등으로 정규직이 줄고 비정규직이 늘면서 열심히 일해도 가난한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워킹 푸어, 88만원 세대 등은 이미 현실이 된 우울한 시대를 표현하는 용어들이다. 문제는 이들의 가난이 결코 개인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웃의 가난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동정심에서 출발한 것일 수도 있지만 더 구조적인 이유는 극심한 빈곤이나 빈부 격차가 사회의 질서와 안정을 해칠 수 있으며, 나아가 국가의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가난은 사회를 유지할 수 있는 건강한 인력 확보를 어렵게 하며 사회불안과 갈등, 사회적 비용을 유발한다. 나아가서는 민주주의의 위기를 부르는데, 가난과 절망에 빠진 사람들은 자신의 정치적 권리 행사에 무관심해지거나 적절한 판단력을 잃기 쉽기 때문이다.
한 사회가 빈곤을 보는 관점에 따라 대응 수준은 다를 수밖에 없다. 이제 사회안전망의 도움 없이 가족 간 도움이나 자신의 근면으로 빈곤에 빠지지 않고 세상을 헤쳐나가던 일은 옛날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경제구조가 불안정해지면서 가족 해체 또한 급속히 확대되고 있다. 저자는 우리 사회가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겠다 싶던 무렵에 두 차례의 경제 위기를 경험했다며 아쉬워한다. 희망이 작아지고 절망은 커진 빈곤 문제와 마주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도 빈곤 극복이라는 목표를 포기하지 말자고 말한다. 빈곤을 그대로 놔둬서는 위험하다는 식의 쫓기는 입장에서가 아니라, 새로운 빈곤의 시대도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과 의지를 갖자고 말한다. 책 후반부에서는 우리나라 빈곤 정책의 역사와 문제점, 빈곤 극복을 위한 의미 있는 대안들이 소개된다.
신남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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