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雲門서 華岳까지] ⑩봄 '자연계절은 스스로 바뀌지만,…'

자연계절은 스스로 바뀌지만, 인간세상 봄은 누군가 깨워야…

가지산 남서쪽 비탈을 내려서는 백운산 암릉 위에 선 소나무. 저 남쪽 건너보이는 것은 천황산 줄기다.
가지산 남서쪽 비탈을 내려서는 백운산 암릉 위에 선 소나무. 저 남쪽 건너보이는 것은 천황산 줄기다.
지난 1월 31일 청도남산 정상봉에서 열린 청도산악회 시산제. 추위가 풀리면서 여러 산악회들이 새해 등산 출발을 고하는 시산제를 올리고 있다.
지난 1월 31일 청도남산 정상봉에서 열린 청도산악회 시산제. 추위가 풀리면서 여러 산악회들이 새해 등산 출발을 고하는 시산제를 올리고 있다.
반재돈 회장.
반재돈 회장.

근년에 기자가 주로 따라다니며 산을 배우는 산악회는 '대구마루금'이다. 그 모임 이한성(61) 등반대장은 이번 취재를 돕기 위해 일부러 이쪽 산 답사 프로그램을 운영해 주고 있기까지 하다.

그러던 어느 날, 가지산 큰 지릉을 한창 애써 오르고 있을 때 저 앞의 봉우리가 왁자지껄했다. 힘들인 끝에 전망 틘 높은 곳에 오르게 돼 기쁘다는 표시일 터였다. 그러자 우리 일행 중 한 사람이 혼잣말처럼 한말씀 하셨다. "저 사람도 아침에 돼지밥 먹은 모양이네." 처음엔 어리둥절해 했지만 모두들 곧 뜻을 알아챘다. 숨죽인 웃음소리가 은근히 동행들 속으로 퍼져나간 게 증거였다. 산에서 소리 지르지 말라고 점잖게 핀잔 먹이는 말이었다.

표현과 대화는 이렇게 은근하고 부드러운 게 좋다. 직설적이고 격하면 여유가 없어진다. 이번 시리즈를 읽는 몇몇 등산 동료들이 건네 온 지적도 그런 쪽이었다. 팩트 중심으로 너무 팍팍하면 많은 사람들이 따라 읽기 힘들지 않겠느냐, 더 재미있고 여유 있게 이야기를 풀어갈 수 없느냐… 대충 그런 내용이었다.

문득 다른 산 동료들 얘기가 떠올랐다. 한 친구가 "요즘 어떻게 지내느냐"고 묻기에 그가 "백두대간 한다"고 답했다. 대간을 종주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산을 모르는 그 친구는 그런 상호를 쓰는 호프집 장사 한다는 말로 잘못 듣고는 놀라워했다.

또 다른 에피소드도 있었다. 친구에게 백두대간 가자고 했더니 그게 술집 가자는 이야기인 줄 알고 따라나서더라는 거다. 하지만 그는 그길로 종주대열에 끼이게 됐고 결국엔 완주까지 해냈다. 해피엔딩이니 그나마 듣기 좋다.

무박 장거리 등산팀을 태워갔다가 헤드랜턴 불빛에 놀라 떤 관광버스 기사 이야기도 있다. 새벽 3, 4시쯤 산에 붙어 오르기 시작하는 산꾼들을 내려준 후 어두워 차를 돌리지 못해 그대로 머물러 있는데 난데없이 파란 불빛들이 떼 지어 몰려왔다. 틀림없이 도깨비들이다 싶어 온몸이 얼어붙었다. 그런 풍경을 생전 처음 봤다는 얘기였다.

산은 아직도 이렇게 많은 이들에게 낯선 땅이다. 휴일에 근교산을 다녀오거나 모집산악회의 안내등반에 동참하는 경우는 늘었지만, 그것과 산줄기를 아는 것은 다를 수 있다. 그러니 과객 같은 산꾼들까지 잘 이해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려면 더 많은 지면이 필요하다. 하나 써야 할 것은 많은데 지면이 너무 좁다. 쓰는 사람에게도 이게 가장 큰 스트레스다.

그러나 너무 걱정만 할 일은 아니려니 믿는다. 예를 들어 "날이 이렇게 추운데 어떻게 산에 가느냐"는 걱정은 어머니들에게 어울리는 것이다. 반면 산꾼들은 얼어야 산이 오히려 맑게 보임을 안다. 그러니 정말 산과 우리 생활사에 애정 있는 사람이라면 당장 읽기 팍팍하다는 이유만으로 불평을 다하는 일은 없을 테다.

산꾼은 높은 데 올랐다고 희희낙락하거나 낮은 재에 떨어졌다고 낙담하지도 않는다. 오르고 내리고 다시 오르고 하는 게 등산이며, 인생 또한 그러함을 안다. 신화 속의 시지프스를 이해하는 게 산꾼이다. 이들에게는 뭐든 쉽사리 읽히는 일회용 글이 되레 이상스러울 수 있다. 10년 100년 후까지 소용될 내용이 담기지 못하게 되는 걸 더 걱정할 수도 있다.

익은 산꾼들의 걸음은 그래서 여느 사람들 것과 다르다. 후다닥 후다닥하는 법이 없다. '■者不立/跨者不行'(기자불립/과자불행)이라는 '도덕경' 구절을 배우지 않아도 스스로 그 법을 체득한다. 욕심이 앞서서 까치발을 해 봐야 높이 서 있을 수 있는 시간이라곤 몇 분이 채 못 되고, 빨리 가겠노라고 째질 만큼 가랑이를 벌려서는 한 걸음도 채 걷지 못할 것임을 스스로 깨닫는다.

그들은 오직 격에 맞게 걷는 것만이 옳은 길임을 잘 안다. 힘들다 할 게 아니라 보폭 좁힐 줄 모르는 자신을 탓해야 함을 안다. 산줄기 오르다 숨이 차는 건 능선 가파른 탓이 아니라 속도 욕심에 휘둘린 자신 탓임을 안다. 오직 지키는 일은 단 하나, 결코 포기하거나 주저앉지 않는 것이다. 이 또한 길고 힘든 인생길을 가는 가장 기본 되는 방법임을 잘 알기 때문이다.

지난겨울은 혹독했다. 근래 만난 적 없는 강추위였다. 필자 또한 그걸 통과해 오기가 간단치 않았다. 하나, 그런 중에도 더러는 기쁨에 들뜰 수밖에 없었던 사안들이 있었다. '청도산악회'도 그 하나였다. 그 단체가 중요한 산봉우리 곳곳에 세워둔 '정상석'(頂上石)이 그랬다.

정상석은 산악회들이 어쩌다 의욕을 내거나 기념사업으로 세우는 표지다. 하나 청도산악회는 그런 류가 아니다. 세운 돌이 너무 많다. 사룡산서 벌써 두 개를 만났고, 학대산과 문복산 정상에서도 그랬다. 가지산 정상석도 청도산악회서 세운 것이고, 운문산에는 그런 게 둘이나 서 있다. 억산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앞으로 비슬기맥을 걷게 되면 더 많이 만나게 될 터이다.

이렇게 한 산악회가 집중적으로 정상석을 세운 경우는 전국서도 유례를 찾기 힘들 것이다. 유별난 크기에서도 비교할 수 없긴 마찬가지다. 뚜렷한 목표의식과 장기적인 계획이 없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필연코 뜻이 있지 않고는 이뤄낼 수 없는 일이다.

그렇게 주목하고 있을 때 초기 리더를 맡아 헌신했던 반재돈(潘在敦·77) 명예회장과 연락이 닿았다. 3년 전 미국으로 옮겨 가 사는 분이라 했다. 어쩌다 한번 귀국하는 일정과 요행히 맞아떨어진 것이다. 이번 취재 과정에 여러 가지로 복이 많다고 느끼고 있는바, 이 만남도 그 중 하나였다.

증언과 자료들에 따르면 청도산악회가 만들어진 것은 1982년 5월 21일이었다. 주도자는 당시 김상대 경찰서장이었다. 대단한 산을 갖고 있으면서도 군민들이 그걸 알지 못해 다른 지방에 명성을 뺏기고 있으니 청도 산 되찾기 운동을 벌이자는 게 취지였다.

하지만 김 서장은 산악회 기초만 놓은 단계에서 딴 곳으로 전근 갔다. 영입된 반 회장이 모든 걸 알아서 기획하고 추진해야 했다. 그러나 개업의이던 그는 산과 인연이 없었고 등산 다닐 시간도 없었다. 모인 산악회원 54명도 대개 산을 모르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가진 자산은 오직 애향심이었다.

반 회장은 청도 주요 산에 ▷정상 표석 세우기 ▷등산로 만들기 ▷등산안내도 만들어 알리기 등을 기본 사업으로 채택했다. 일대 주요 산들에 저렇게 많은 정상석이 세워진 것은 그 덕분이었다. 10대 산봉에 일 년 사이 표석을 거의 다 세웠다.

알고 보니 다른 지방들보다 시기적으로 늦은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이쪽서 정상석 세우기를 선점한 경우가 더 많았다. 같은 산을 두고 서로 다른 이름을 쓰는 경우엔 자기네 호칭을 그 때문에 뺏겼다고 한탄하는 일까지 생겼다. 운문산이 예다. 산 넘어 밀양 땅에서 부르던 '함화산'이란 이름이 그로써 사라졌다는 거다. 운문산 서릉 초입에 그 애달픔을 기록한 표석이 서 있다.

이뿐만 아니라 청도산악회는 매 5년 단위 창립기념 기간 때마다 훼손된 표석을 다시 세우거나 보수키로 주기를 정했다. 표석 중에 5월 21일이라는 날짜 표시가 많이 들어가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운문산은 세 번이나 정상석을 바꿔 세웠고, 다른 산도 대개 두 번은 그랬다.

그렇게 열렬한 세월을 거치는 동안 애향산악회가 어느덧 전문산악회로 성장했다. 회원들의 등산 권역은 청도는 물론 전국을 넘어 해외 산으로까지 확장됐다. 반 회장은 무려 15년 7개월간 회장직을 맡아 그 과정을 이끌었다. 발자취는 '청도산악회 15년사'라는 세련된 단행본으로 정리됐다.

반 회장의 열정은 지난 2월 1일 생생하게 목격할 수 있었다. 비슬기맥의 소위 '경산 육동 구간'(발백산~곱돌이재) 답사 때였다. 반 회장은 그걸 제대로 못 걸어봐 미국 가 살면서도 늘 안타까웠다고 했다. 그래서 이번에 등산장비까지 챙겨 왔다는 것이다. 후배 회원들에겐 '로드메저'라는 기구를 들고 동행케 했다. 구간별 거리까지 실측하겠다는 거였다. 취재기자조차 곡선계(曲線計)로 도상 거리나 잴 뿐 엄두 내지 못하는 일이다. 세상에 이런 산악회는 다시 없지 않을까 싶었다.

현장에서 반 회장은 산 흐름을 어찌나 세세히 읽는지 기록에 많은 시간이 걸렸다. 불투명한 구간의 산 흐름을 구분해 내기 위해 물 흐름부터 짚는 모습에선 보기 드문 전문성이 엿보였다. 그렇게 7시간이나 걷고도 힘들어하는 기색조차 없었다. 우리 나이로 78세 되신 어르신 일이라곤 정말 믿기 힘들었다. 저런 열정이 있으니 그 많은 정상석 세우기와 등산로 내기를 모두 회원들 봉사로 해낼 수 있었을 터였다.

비슬산에 정상석을 세워놨더니 그게 대구 땅이라고 해서 누군가가 부숴버린 이야기, 운문산 정상에 멋진 글씨를 새겨야겠다고 해서 유명한 여초(如初) 김응현(金膺顯)씨 글씨를 받았던 이야기, 몇t씩 되는 정상석을 올리기 위해 육군이나 경찰 헬기 등을 고심해 섭외하던 일 등등 일화도 끝이 없었다.

그렇다. 자연 계절은 제 힘으로 바뀌지만 인간세상의 봄은 결코 저절로 오지 않는다. 산에도 누군가가 일깨워야 봄이 온다. 청도산악회가 시범해 보인 일이다. 우리도 이제 다시 우리 지방사·생활사의 봄을 찾아 일어설 시간이다. 이번 한철 집중적으로 걸을 대상은 가지산~운문산~호거산~억산~구만산~육화산 구간이다.

글 박종봉 편집위원

사진 정우용 특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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