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칭찬에 인색한 대구·경북, 곳곳서 변화 바람

대구 사람들도 이제 칭찬과 긍정의 힘을 믿기 시작했다

달성군청은 5년째 칭찬운동을 계속하며 연말에는 칭찬한 직원과 칭찬받은 직원들을 시상하는 자리를 갖고 있다.
달성군청은 5년째 칭찬운동을 계속하며 연말에는 칭찬한 직원과 칭찬받은 직원들을 시상하는 자리를 갖고 있다.
학교 정문 앞에서 선플달기 캠페인을 펼치고 있는 시지초교 학생들.
학교 정문 앞에서 선플달기 캠페인을 펼치고 있는 시지초교 학생들.
논공초교는 선플달기 포스터 그리기와 격려의 문자 보내기 등 다양한 선플달기 행사를 수시로 연다.
논공초교는 선플달기 포스터 그리기와 격려의 문자 보내기 등 다양한 선플달기 행사를 수시로 연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표현은 이제 책 제목을 넘어 격언이 됐다. 칭찬이 학습능력을 향상시킨다는 '피그말리온 효과'는 이미 교육심리학의 정설이 된 지 오래다. 다른 사람을 칭찬하고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그만큼 엄청난 위력을 지니고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대구는 칭찬이나 긍정과 다소 동떨어진 느낌이다. 대구 사람들 스스로도 남을 칭찬하고 북돋워주는 데 인색하다는 이야기를 흔히 한다. 사회적·경제적으로 도움이 안 된다고 하면서도 자성의 움직임은 별로 없었다.

하지만 몇 년 사이 대구도 꿈틀대기 시작했다. 대구 사람들도 조금씩 칭찬과 긍정의 힘을 믿기 시작했고 그런 문화를 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칭찬에 인색한 TK

2년 전 서울에서 대구로 발령받은 김모(34) 과장. 그동안 누구보다 열심히 일한 덕분에 최근 '사내 공헌상'을 타는 경사를 맞았다. 평생 근무하면서 한번 받을까 말까 하는 큰 상이지만 그는 의외로 냉랭한 부서 분위기에 적잖이 당황했다. 부장은 "술 한잔 하자"는 말이 전부였고 몇몇 직원들은 건성으로 하는 인사조차 없었다. 김 과장은 "주위 동료들에게 굳이 칭찬을 듣고 싶은 건 아니었지만 섭섭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서울에서는 부서에 사내 공헌상을 받은 직원이 있으면 모두들 앞다퉈 덕담을 하고 축하 파티도 열어준다고 한다. 그는 "내가 여태껏 동료들에게 너무 밉보인 것이 아닌가 하는 자책감마저 들었다"고 했다.

이모(41) 부장도 사람들이 툭툭 던지는 말이 여간 거슬리지 않는다. 아들 둘에 딸 하나를 둔 그에게 만나는 사람마다 "애국자이시네요"라는 말을 건넨다고 한다. 부러움이 담긴 칭찬으로 넘길 수 있지만 왜 그리 많이 낳았냐는 비아냥으로도 해석할 수 있기 때문에 기분이 나쁘다는 것이다. 그는 "속으로 당신들이 내 아이 키우는 데 보태준 거 있냐고 따지고 싶더라"며 "정말 칭찬을 하고 싶으면 '다복(多福)하시네요' 정도로 표현하는 것이 듣기에 한결 낫다"고 했다.

칭찬 문화에 익숙하지 않다 보니 칭찬을 받아도 기분이 별로 좋지 않다는 이들도 있다. 혹시 무슨 저의를 가지고 저러는 게 아닌지 의심부터 든다는 것이다. 또 자신은 칭찬이라고 했는데 표현이 적절치 못해 상대방에게 비아냥거린다는 오해를 사는 경우도 자주 발생한다. 서울 생활을 오래 했다는 장우영(37·대구 중구 대봉동)씨는 "서울 사람들은 표현이 상당히 세련돼 있고 어휘력도 풍부해 칭찬을 통해 상대방의 기분을 좋게 하는 기술이 있다. 반면 대구 사람들은 표현력이 떨어져 자신의 마음을 잘 전달하지 못한다"고 했다.

영남대 사회학과 허창덕 교수는 "대구는 유별나게 동문이나 동기 모임이 많은 것 같은데 이를 통해 사람들은 심리적 지지를 받고 싶어하고 결국 패거리 문화로 변질된다"고 말했다. 이런 문화는 집단이기주의로 발달해, 남을 칭찬하는 게 자기 집단의 기득권을 해치는 일로 여기게 됐다는 것이다.

게다가 주력산업인 섬유가 한계에 부딪히고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지 못하면서 대구 사람들 스스로 부정적인 이미지를 심화시키고 '우리는 안 돼'라는 패배주의로 밀어넣어 칭찬이나 긍정적인 생각에 더 인색해졌다는 분석이다. 영남대 심리학과 정봉교 교수는 "칭찬을 아부나 아첨으로 혼동하는 사람이 많고 좀 친하다 싶으면 비꼬거나 막말을 하는 경우가 많다"며 "속정이 깊다고 하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친절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이 같은 문화가 외부인들에게 잘못된 선입견을 주기도 한다. 대구 하면 배타적이다, 억세다, 고집스럽다 등의 단어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다. 한 기업인은 "다른 지역의 CEO들을 만나면 대구는 외지인들에 대한 텃세가 너무 심하다는 이야기를 곧잘 듣는다"며 "이는 결국 다른 지역의 자본이나 우수인력 확보에 걸림돌로 작용한다"고 말했다.

◆변신을 위해 노력 중인 TK

최근 들어 이 같은 부정적 이미지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들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학교를 중심으로 관공서, 기업체 등에서 칭찬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다양한 노력들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명곡초교는 2년 동안 여러 가지 친절·칭찬 프로그램을 운영해 큰 효과를 봤다. 이 학교는 매일 2교시 이후 중간놀이 시간에 한 학생의 웃는 모습 동영상을 상영해 학생들이 따라하게 한다. 부모에게 인사하는 법도 꾸준히 교육시켰다. 매일 조·종례 시간에 한 학생이 칭찬을 하면 지목을 받은 학생이 또 다른 학생을 칭찬하는 '칭찬릴레이'를 펼치고 교실게시판에 칭찬 쪽지도 붙이도록 했다. 운영 초반에는 학부모의 27.5%가 '칭찬·친절 교육이 효과가 있다'고 했으나 2년 뒤에는 효과 있다고 답한 학부모가 전체의 62.1%에 달했다.

달성군청은 2006년부터 칭찬 운동을 꾸준히 펼치고 있다. 매주 월요일 간부회의 때 자신의 부서에 칭찬할 만한 직원을 뽑아 사례로 발표한다. 이 사례는 방송을 통해 군청뿐 아니라 읍·면·동까지 전파된다. 칭찬받은 직원은 금세 군청 스타가 된다. 연말에는 칭찬한 직원과 칭찬받은 직원들을 뽑아 시상하는 행사를 갖는다. 달성군청 행정지원과 조현구 팀장은 "처음에는 칭찬을 쑥스러워하는 분위기였지만 지금은 정착이 돼 직원들의 기를 살려주는 데 한몫하고 있다"고 했다.

행복을심는치과 동성로점은 간호사 이직률이 제로다. 이직률이 높은 편인 간호사 계통에서는 이례적이다. 간호사 5명 중 10년 이상 근무한 간호사가 2명이나 된다. 간호사 최혜숙(36·여)씨는 "원장 선생님이 간호사들의 생일을 꼬박꼬박 챙겨주고 수시로 웰빙음식을 가져와 나눠 먹는다"고 말했다. 또 사소한 일이라도 관심을 갖고 칭찬을 자주 해준다고 한다.

서비스 전문 교육기관인 대구서비스교육센터 우기윤 대표는 "아직 대구 정서가 부드럽지 못하고 딱딱한 편이지만 이를 바꾸려는 노력들이 이뤄지고 있다"며 "특히 음식점을 중심으로 친절 문화가 많이 성숙해가고 있다"고 했다. 또 다른 서비스교육업체 관계자는 "경북은 아직 기본 응대나 대화 자체에 배려가 부족하고 자기 위주로 하는 성향이 강한데 대구는 과거에 비해 이 같은 현상이 많이 줄었다"고 말했다.

'선플달기' 운동도 활기를 띠고 있다. 선플달기는 인터넷 악플(악성댓글)로 인한 폐해가 심각해지자 격려하는 댓글을 많이 달아 인터넷을 정화하자는 운동이다. 논공초교는 지난해 2학기 때 특정한 날을 정해 지인이나 친구들에게 긍정적인 내용의 문자보내기를 진행하고 학교 게시판에 긍정적인 답글을 쓰는 이벤트를 수차례 열었다. 또 조암초교, 시지초교 등 많은 학교에서 선플티셔츠를 만들거나 선플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논공초교 김상훈 교사는 "보통 초등학생들이 아무 생각 없이 악플을 다는 경우가 많은데 이 같은 운동을 통해 학생들이 댓글을 달더라도 한번 더 생각하게 되고 칭찬이나 격려에 익숙해지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정봉교 교수는 "칭찬하고 긍정하는 자세는 행복도를 높이고 삶의 어려움을 잘 헤쳐나가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며 "끊임없는 교육과 캠페인을 통해 대구에 칭찬과 긍정의 문화가 정착되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전창훈기자 apolonj@msnet.co.kr

(사진설명)0045=달성군청은 5년째 칭찬운동을 계속하며 연말에는 칭찬한 직원과 칭찬받은 직원들을 시상하는 자리를 갖고 있다.

시지초교=학교 정문 앞에서 선플달기 캠페인을 펼치고 있는 시지초교 학생들.

논공초교=논공초교는 선플달기 포스터 그리기와 격려의 문자 보내기 등 다양한 선플달기 행사를 수시로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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