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의창] 성형(成形)

조바니 보카치오(Giovanni Boccaccio)가 쓴 '데카메론'을 보면, 남자는 여러 가지 일에 야망을 품고 죄를 짓는 수가 있지만, 여성들은 좀더 아름다워지고 싶다는 욕망이 너무 커 죄를 짓는 수가 있다고 했다. 그렇지만 지금은 아름다워지고자 하는 욕망이 여자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남자들도 성형수술을 받고 피부 관리를 하며 흰머리에 염색약을 칠한다.

인간들은 왜 그리 예뻐지려고 하는가? 동물의 세계를 잠깐 들여다보면 답을 안다. 수컷이 예쁜 꿩이나 공작은 새끼 키우는 일을 암놈한테 맡기고 자기는 암컷 꾀는 데에만 혈안이다. 반면 암컷이 예쁜 도요새는 알을 품고 새끼를 키우는 일을 수컷한테 맡기고 자기는 수컷 꾀는 데에만 전심전력한다. 어찌 이들과 인간들이 다르겠는가?

젊은 여자 분이 외래 진료실로 들어왔다. 뇌가 썩고 있으니 MRI촬영을 해달라고 했다. 10여 년 전에 성형수술을 받았는데 그때 사용한 물질이 부식되어 뇌를 썩게 만든다는 이야기다. 이마의 피부가 약간 검은색으로 변한 것 이외에 특별한 이상 소견이 없었다.

성형수술에 사용한 재료는 두개골 밖에 존재한다. 뇌를 부식시킬 이유가 없다. MRI를 촬영할 이유가 없다고 환자를 설득했지만 너무나 강력하게 요구하여 MRI사진 촬영을 시행했다. 사진 상 뇌가 괜찮은 것을 보여 주면서 "지금까지 본 여성 중에 가장 아름다운 분 같은데 무엇 하러 성형수술을 하셨나요?"하고 웃으면서 말하고 그녀를 안심시켰다.

그렇다면 인간은 얼굴만 성형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목욕탕에서 발가벗고 목욕할 때는 사람들이 그렇게 다르게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목욕탕을 나와서 비싼 옷을 입고 비싼 화장품으로 화장을 한 후에는 돈이 있는 자와 없는 자가 구별된다.

수많은 광고도 또 하나의 성형수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똑같은 제품이라도 광고여부에 따라서 혹은 광고의 이미지에 따라서 가치의 차이가 나는 듯한 느낌을 얻기 때문이다. 상품뿐만 아니라 의료의 수준도, 학벌도, 심지어 이름까지도 성형화된 허상 때문에 우리들은 차별을 느낀다. 가공적인 것을 진실로 믿고 참된 존재를 등한시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나한테 진료를 받았던 그분도 참모습은 아니었을 것이다. 성형된 모습을 보고 내가 그렇게 아름답게 느꼈을지도 모른다.

문득 어느 영화감독이 이야기 했던 말이 생각난다. 영화는 잔상(殘像)의 눈속임이라고. 그렇다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은 어떠한가. 혹시 성형한 허상을 진실한 모습으로 착각하고 환영을 좇으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임만빈<계명대 동산의료원 신경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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