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이혼녀? 미망인?

시한부 선고를 받았지만 자신만이 그 사실을 모르는 여자가 암 투병 중인 자신을 방치하는 남편에게 이혼을 청한다. 이혼남이 되려던 남편은 자신이 수혜자인 거액의 생명보험 가입 사실을 알고선 홀아비가 되기로 한다. 여자는 몇 개월짜리 다정하고 헌신적인 남편을 새로운 시작이라 믿고, 지켜보는 이들은 여자의 남은 생을 망칠까봐 씁쓸히 함구한다. 얼마 전 병원을 소재로 한 드라마에서 본 일화다. 한 사람에게는 생과 사의 갈림길의 문제가 그와 혼인한 다른 사람에게는 법적으로 재산분할이냐 상속이냐의 문제가 되기도 한다.

실제 이런 일이 있었다. 갑자기 쓰러져 의식을 잃은 배우자를 상대로 혼인해소 및 재산분할청구를 했는데 그 배우자는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채 사망했다. 법적으로는 사망 전 혼인이 해소되었느냐 아니냐에 따라 재산분할과 상속이 갈리는 문제이다. 요즈음에는 전업주부라 하더라도 대략 40%가량을 재산분할로 인정하는 점을 고려하면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별다른 차이가 없을 듯하나 문제는 그 혼인이 사실혼이었다는 점이다. 사실혼이란 단순한 동거와는 완전히 다른 것으로 일반적인 혼인에서 혼인신고만이 빠진 경우를 가리킨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사실혼인 부부들이 많은 현실이 반영되어 법적 불이익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으나, 사실혼 배우자가 상속인이 될 수는 없다. 그래서 부득불 의식불명이더라도 아직은 살아있는 배우자를 상대로 다급한 혼인해소 및 재산분할 청구가 필요했던 것이고 재산분할이냐 상속이냐 하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재산분할이 가능한가 아닌가의 절박한 문제가 되었던 것이다. 지난해 대법원은 상대방이 의식불명 상태이더라도 일방의 의사만으로 사실혼 관계를 파기하는 것이 가능하므로 재산분할 청구가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했다.

법원 앞 여자의 기다림으로 시작되는 소설이 있었다. 기다림의 대상은 남편. 그녀는 마침내(?) 이혼녀가 되기로 결심한 것이고 이야기는 자연스레 그들의 만남에서 그 마침에 이르기까지의 회상으로 이어진다. 그 가운데로 끼어든 작은 소란. 건너편 횡단보도에서의 교통사고. 기다리는 남편은 오지 않은 게 아니라 올 수 없는 것으로 판명된다. 그래서 이혼녀가 되려다 미망인이 되고만 여자. 헤어지기 위해 기다리던 이가 영정사진 속에 있고 다시(?) 그의 아내라는 자리에 영구히 고정되어 문상객을 맞는 미망인의 표정이란 어떤 것일까, 어떤 것이어야 할까, 미움이 극에 달해서이든 미움마저 고갈된 무심의 경지에서이든 이혼에까지 이르렀던 마음과 가장 가까웠던 한 인간의 죽음 앞에서의 온전한 슬픔과 회오. 예전에는 그런 생각들만 막연히 했던 듯하다.

세 이야기는 결국 모두 같은 거라고, 살아남은 자의 일상이고 슬픔이라고 뭉뚱그린다면 지나친 단순화인 것일까. 더 이상 마음의 일로만 읽히지 않는 지금의 안타까움은 무엇보다도 현실에서 온전히 그 마음들을 헤아리려는 애씀이 되어야 할 것이기에.

변호사 김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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