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 증자께 뵈와
조광조
꿈에 증자(曾子)께 뵈와 사친도(事親道)를 묻자온데
증자왈 오호(嗚呼)라 소자(小子)야 들어스라
사친이 기유타재(豈有他哉)리오 경지이이(敬之而已)하시니라.
'스승' 을 생각해 본다. 오늘날 "선생은 있어도 스승은 없다"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스승과 선생은 어떻게 다른가. 사전적 해석으로는 '스승'은 '자기를 가르쳐서 인도하는 사람'이고, '선생'은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이다. 별반 다를 게 없다 싶지만 '스승'이란 다분히 존경의 의미가 담기고 '선생'은 직업적이라는 느낌이 든다.
우리 옛시조는 임금과 부모에 관한 작품은 많지만 스승을 기리는 작품은 거의 없다. 유교시대 오로지 임금만을 섬겨야 하는 사회적 가치 때문에 임금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을 기린다는 것은 불경죄에 속했을 것이고, 그래서 스승을 기리는 노래를 남기지 못했을 것이다.
어느 시대나 '스승'의 역할은 지대했다. 인류가 모실 스승이 있고, 국가가 모실 스승이 있으며, 개인적으로도 존경하는 스승을 가슴에 모실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선 스승의 날이 어긋난 자식 사랑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적도 없지 않았다. 자식의 선생이 아닌 자기의 스승을 한번 생각해보는 보는 것이 스승의 날 의미를 진정하게 새기는 일일 것이다.
위 시조는 조광조(趙光祖· 1482~1519)의 작품이다. 시조에 한문이 많이 들어 있어 친근미는 없지만 '스승'의 역할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짚어볼 수 있는 작품이다. '사친도'는 이른바 '어버이 모시는 도리'다. 그것을 몰라 큰 스승인 증자께 꿈에 물어본다는 것과 중장의 대화체가 이색적인 작품이다. 증자는 중국 노나라의 유학자로 공자의 덕행과 사상을 조술(祖述)하여 공자의 손자인 자사에게 전한 사람이다. 그의 저서에 『증자』가 있는데 이 책은 인생행위의 근본을 '충'에 두고 행위와 덕의 바탕을 '효'에 두었다.
그러니 어버이 섬기는 일은 큰 스승인 증자께 묻는 것이 가장 바른 길이라고 생각하여 꿈에 뵈옵고 물은 것이다. 현대어로 풀어보면 "꿈에 증자를 뵙고서 어버이 모시는 도리를 물었더니 증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오, 이 사람 그것도 모르나? 들어 보게나 어버이를 받드는 것이 별 다른 게 있는가. 오로지 공경하면 되는 것뿐이다'라고 하시더라"가 된다.
무슨 말을 덧붙일 수 있으랴. 스승도 어버이처럼 공경받아야 할 분들이다.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고 하지 않았는가.
문무학 (대구예총회장 · 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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