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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설립 막는 일제 맞서 대구 유지들 5만원 모아 대구여고보 설립하기도

광주학생운동 당시 구치소로 연행되는 여학생들.
광주학생운동 당시 구치소로 연행되는 여학생들.

영남 지역은 애국계몽운동기 여성교육을 위한 학교 설립 운동이 전국에서 가장 활발했다. 이 같은 전통은 일제의 강제 병합기에 들어와서도 지속된다.

1920년대 명도여자학원, 명신여학교(대구복명여자보통학교), 교남여자학원, 영신여자학원 등이 설립됐고 경북 영주 출신의 김현재는 서울에서 조선여자강습원을 설립해 여성 교육에 힘을 보탰다.

그럼에도 여성에 대한 전통 규범과 일제의 차별 정책으로 1920년대 보통 교육의 여성 진학률은 10%에 미치지 못했고, 중등 이상의 여성 공립학교 설립 역시 1920년대 내내 한 자릿수에 머물렀다. 또한 이 시기 조선인들의 노력과 주도에 의해 설립된 학교들은 일본인 학교에 비해 온갖 어려움과 차별을 받아야 했다.

대구 유일의 초등 공립학교인 대구여자보통학교의 경우 이 학교 건물은 일본인의 심상소학교를 인수한 것이었다. 이 일본인 학교는 건물이 낡고 좁아 위험 판정을 받았고, 이 때문에 다른 장소로 이주할 계획이었다. 그럼에도 당시 대구부(지금의 대구시청 격)는 쓸모도 없는 건물의 겉만 페인트를 칠한 뒤 높은 가격으로 여자보통학교에 팔아넘긴 것이다. 1천여명의 자녀들이 위험한 교사에서 배우는 것을 보다 못한 조선인들은 학부형회를 열어 학교 이전을 결의한 뒤 부윤(시장)과 교섭했지만 학부형 측에서 재원을 마련하라는 대답만 들어야 했다.

비슷한 양상은 중등 공립교육 기관인 대구여자고등보통학교의 경우에도 찾을 수 있다. 중등 이상의 학교 설립을 의도적으로 억압한 일제 정책에도 불구하고 대구의 조선인 유지들은 조선 여성을 위한 고등보통학교 설립에 노력했다. 1924년 여름 서병조를 실행위원장으로 하는 기성위원회를 만들어 정무총감에게 학교 설립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 결과 1926년 3월 설립 인가를 받아 덕산동 육군관사 서북편으로 학교 부지를 확정했다. 당시 지주 3인 중 일본인 2명의 반대로 토지수용령까지 적용하는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학교 설립에 대한 조선인들의 애정은 대단했다. 대구는 물론이고 영양 등 경북의 지방 유지들도 자진해 설립 기금을 기부, 학교를 짓는데 필요한 자금 5만원을 모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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