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중국발 신용평가

외환위기가 동아시아를 삼키고 있던 1998년 4월 국제신용평가사인 무디스가 일본의 국가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강등했다. 이 조치는 당시 세계 최대 채권국이던 일본의 자부심을 여지없이 무너뜨렸다. 이에 대장성(大藏省)은 "신용평가사를 역평가하겠다"며 정면 승부를 선언했다. 그러나 결과는 싱거웠다. 역평가의 핵심은 신용평가사의 순위를 매기겠다는 것이었는데 그해 말 발표된 역평가 보고서에는 이것이 빠졌다. 또 무디스에 대해 욕은 하면서도 "신뢰할 만하다"는 아부성 발언도 들어있었다. 약세를 본 무디스는 이후 4차례 연속 일본의 신용등급을 낮춰 칠레, 보츠와나 등과 동렬에 놓는 모욕을 줬으나 일본은 찍소리도 못했다. 피치와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무디스와 보조를 맞추며 일본의 자존심에 상처를 줬다.

이들 3대 신용평가사가 이렇게 막강한 힘을 갖게 된 것은 1975년 미국증권거래소가 이들을 '국가공인통계평가기관'(NRSRO)으로 지정하면서부터다. 'A' 등급 남발을 막기 위한 신용평가사 자격 요건 강화가 목적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이들이 신용평가시장을 과점하는 부작용을 낳았다. 이 과점 체제를 깨기 위한 시도가 여러 번 있었지만 모두 불발로 그쳤다. 최근 남유럽발 재정위기 때 유럽연합(EU)도 신용평가사를 평가하겠다고 나섰지만 아직 구체적인 진전은 없어 보인다.

그러자 이번에는 중국이 나섰다. 반관(半官) 성격의 다궁(大公)국제신용평가사가 미국을 포함한 50개국의 신용등급을 발표한 것이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중국을 10위로 올리고 현재 국가신용등급 부동의 1위 미국을 13위로 끌어내린 점이다. 빚더미에 앉아있는 미국 경제의 현실을 감안할 때 이런 등급 산정은 나름대로 객관성을 갖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진짜 의도는 따로 있는 듯하다. 부쩍 커진 국력을 바탕으로 세계경제 패권을 놓고 미국과 일전을 불사하겠다는 의지의 표시가 아니냐는 것이다. 이를 지켜보는 우리의 마음은 불편하다. 천안함 사태에서 드러난 중국의 모습은 분명 '선량한 이웃'이 아니었다. 당시 외교부 대변인은 한국을 겨냥해 "언행에 주의하라"는 막말까지 했다. 이런 중국이 두둑해진 주머니를 내세워 앞으로 우리를 어떻게 대할지 걱정된다.

정경훈 논설위원 jghun316@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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