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이 잔뜩 드리워진 덕분에 한낮 뙤약볕은 피했지만 푹푹 찌는 더운 기운은 막을 길이 없다. 이마에서 흘러내린 짭짤한 땀방울이 눈에 들어가 따갑다. 이마에 질끈 동여맨 손수건마저 땀을 흘릴 지경이다. 저 아래 낙동강에서 멱을 감는 사람들이 그저 부럽다. 안동호와 임하호에서 흘러내려 안동에서 만난 물줄기는 동에서 서로 굽이치며 흐르다 하회마을에서 크게 물돌이를 한다. 오늘 찾은 길은 안동과 하회마을의 중간쯤 되는 낙동강변. 지명은 안동시 풍산읍 마애리다. 돌아드는 물줄기의 남쪽에 거대한 암벽들이 마치 수십 폭 병풍을 펼쳐놓은 듯 기세등등하게 서 있는 바로 그곳이다. 풍산초교를 옆에 끼고 단호리 쪽으로 길을 잡으면 쉽게 찾을 수 있다.
길 안내를 맡은 최성달 작가는 안동에서 활동 중이다. 지난해 권준 화백과 함께 '사람의 길을 가다'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권 화백은 퇴계와 주변인물, 퇴계가 거닐던 오솔길 주변의 풍광을 그림 속에 담아내고, 최 작가는 그림과 함께 이야기를 풀어가는 식으로 퇴계의 삶을 비교적 쉽게 조명했다. 최 작가는 지금 마애리에 푹 빠졌다. 어쩌면 퇴계와 맥이 닿아있는지도 모르겠다.
##거대한 암벽 수십폭 병풍 펼친 듯
마애리 앞을 흐르는 낙동강을 '망천'이라 부르기도 한다. 중국의 절경 중 하나로 꼽히는 망천처럼 아름다워 이름 붙여졌다. 아울러 마애리는 원래 퇴계의 본인 진성 이씨 집성촌이다. 진성 이씨는 3개 파로 나뉘는데 큰 집이 두루파, 둘째가 망천파, 셋째가 퇴계의 예안파이다. 망천파의 마애리 터전은 600여 년 역사를 자랑한다. 지금도 진성 이씨 70여 가구가 살고 있는 아담한 마을이다.
최 작가는 오늘 걷는 길을 '하늘길, 바람의 언덕'으로 이름 지었다. 망천을 호위하듯 둘러싼 절벽보다 훨씬 위에 하늘과 맞닿아 있는 능선길을 걷기 때문이다. 길은 이미 있었으되 어떤 이야기를 덧입히느냐에 따라 걷는 이의 느낌은 사뭇 달라진다. 인적이 끊긴 임도라면 그저 그런 평범한 느낌이겠지만 '하늘길, 바람의 언덕'으로 불러주는 순간, 그 숲길은 전혀 새로운 대상으로 다가선다.
최성달 작가가 의미를 덧입히는 역할을 맡았다. 잊혀진 길로 내버려두기 아까워서, 그리고 사람이 찾는 살아있는 길로 만들고 싶어서다. 게다가 안동시는 '낙동강 70리 생태공원' 조성사업을 펼치며 인근에 많은 볼거리와 놀거리를 만들 계획이다. 풍산에서 마애리로 오다 보면 낙동강을 가로지르는 풍남교 건설과 함께 강 건너편에 '하아그린파크' 조성도 한창이다. 이미 조성된 마애솔숲 문화공원과 마애선사유적전시관, 낙동강생태학습관 외에 다양한 문화단지와 공원, 습지 조성이 진행 중이거나 계획돼 있다.
'하늘길'은 마애선사유적전시관을 지나 단호교를 건너자마자 오른쪽으로 길을 잡으면 만날 수 있다. 단호교에서 바라보면 능선을 굽이치는 산길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산자락 아래 검암습지를 오른편에 두고 길을 오른다. 수월한 길이다.
최성달 작가는 "부부끼리 싸운 뒤에 걸어가면 좋은 길"이라고 했다. 수려한 계곡이 흐르는 길도 아니고, 깎아지르는 절벽이 감탄사를 내뱉게 하는 길도 아니다. 어찌보면 재미없을 이 길을 걷다 보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지 않을 수 없다. 길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함께한 사람을 바라볼 수 있게 만드는 길. '하늘길, 바람의 언덕'의 매력이다. 서너 굽이를 돌아 능선에 올라서면 저 아래 낙동강이 휘돌아나가고, 가까이는 마애리가 멀리는 풍산 땅이 한눈에 들어온다. 어디선가 불어온 한 줄기 바람이 등줄기를 서늘하게 한다. 강변엔 바람 한 점 없이 고요하더니 역시 '바람의 언덕'답게 산바람이 살랑살랑 교태를 부린다. 미운 마음도 술술 풀릴 법하다.
##낙동강 70리 생태공원 조성 활발
2시간가량 산길을 걷다 내려서면 앞서 풍남교와 하아그린파크 조성지가 나온다. 다시 포장길을 따라 출발지인 단호교 쪽으로 가다 보면 오른편에 마애솔숲이, 왼편에 마애리를 만난다. 길 옆에 옛 정자가 길손을 부른다. 조선 광해군 시절 관직을 지냈던 호봉(壺峯) 이돈(李燉'1568~1624)이 벼슬을 버리고 고향에 돌아와 학문에 정진하며 후학을 키웠다는 산수정(山水亭)이다. 뜰에는 잡초가 무성하고, 문살 창호지는 곳곳에 뜯어진 채로 남아 안타까움을 더하지만 옛 집의 은은한 멋과 정취는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길을 걸을수록 시간은 거꾸로 흐른다. 마을 끝 단호교 옆에 이르면, 천 년의 세월을 거슬러 '마애동 석조 비로자나불좌상'을 마주하게 된다. 산수정의 풍상은 이곳 불상에 비할 바가 아니다. 숭유억불 정책 탓에 옛 절터에 남아 있던 주춧돌은 아무렇게나 나뒹굴고 있고, 불상 입구에는 봉분까지 자리잡았다. 팔각의 연꽃 문양 좌대에 앉은 불상은 오랜 세월 비바람에 깎이며 형태를 많이 잃었다. 그런 핍박과 괄시를 받으면서도 솔숲 가운데 꼿꼿하게 정좌하고 앉은 불상의 모습에서 뭔지 알 수 없는 뜨거움이 느껴진다.
##걷는 길따라 역사의 숨결 가득
최근에 건립된 '마애선사유적전시관'도 빼놓을 수 없다. 시간은 천 년도 훌쩍 뛰어넘어 3만~4만 년 전으로 달음박질한다. 2007년 안동시에서 '마애솔숲 문화공원'을 만들 당시 매장문화재 발굴조사에서 후기 구석시시대로 추정되는 유물이 발견됐다. 종전 청동기시대 유물만이 발견돼 안동의 뿌리를 3천500~4천 년 전으로 추정했지만 이곳 유물 덕분에 기원은 훨씬 더 거슬러 올라갔다. 출토된 석기와 함께 발굴 당시의 상황, 발굴지 모습 등을 상세히 담아놓아 낙동강 주변에 터를 잡았던 선사시대인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다시 길을 따라 낙동강을 거슬러 남후면 단호리에 이르면 낙동강 생태학습관에 갈 수 있다. 마애리가 진성 이씨의 땅이라면, 생태학습관 뒤편 상락대(上洛臺)에서 바라본 강변 들판은 고려말 명상이고 명장이며 뛰어난 외교가였던 상락공 김방경(1212~1300)의 땅이다. 안동에서 태어나 안동에 묻힌 김방경은 중앙 무대에서 요직을 두루 거치며 화려한 정치력으로 일가를 이룬 인물. 아울러 당대 지성이었던 요요암의 신화상과 선시를 주고받고, 제왕운기를 집필한 이승휴와 학문을 논할 만큼 유불선 등 다방면에 뛰어난 식견을 보유한 지식인이었다. 상락대는 하늘이 비경을 감추어 두었다가 비로소 상락공을 통해 세상에 드러냈다고 할 만큼 주위 풍광이 수려하다. 낙동강이 유유히 흐르는 가운데 검암습지가 보이고, 왼편으로 안동 김씨 천년 세거지인 회곡리와 수동이 한눈에 들어온다. 오늘 걸은 길은 '하늘길과 바람의 언덕'이었으되 하늘과 바람뿐 아니라 역사 속에 살아 숨 쉬는 안동을 만날 수 있는 소중한 걸음걸음이었다.
글'사진=김수용기자 ksy@msnet.co.kr
도움말=작가 최성달, 안동시청 관광산업과 054)840-6393
전시장소 협찬=대백프라자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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