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엄창석의 뉴스 갈라보기] 아름다운 말, '공정'

아련한 기억이나 주워들은 얘기를 떠올리자면, 종전 후인 1950년대와 60년대에는 지식인들의 대중 강연이 성행을 했다. 공식적인 강연장은 물론이거니와 사람들이 붐비는 역 앞이나 거리에서 수시로 강연회가 개최되었고, 그럴 때면 몰려드는 인파로 미어터졌다고 한다. 극히 불안정한 시대였던 탓에, 어떤 정체성을 가져야 하고 중심 되는 담론이 무엇일까 하는 궁금증이 청중들을 구름떼처럼 불러 모은 것일 테다.

지난 8월 20일에 과거 50, 60년대의 강연을 연상시킬 만큼 엄청난 수의 군중이, 의 저자인 마이클 샌델 교수의 강연장에 몰려들었다고 한다. 청중이 4천 명이나 되었다고 하니 가수의 콘서트장을 방불케 한다. 이토록 수많은 청중들이 몰려든 이유는, 다소의 차이가 있다 해도 50, 60년대에 거리 강연장이 꽉 찼던 그 당시와 다를 바 없을 것이다. 그것은 두 가지로 쉽게 정리될 수 있다. 그만큼 '정의'에 대해 목이 마르다는 뜻이겠고,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명중시킬 만한 담론을 찾기 위해서일 것이다.

이런 시민들의 요구를 감지한 탓인지, 마이클 샌델 교수의 방한에 며칠 앞선 8'15 경축사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정의'의 문제를 강력하게 제기했다. "앞으로 우리 사회 모든 영역에서 공정한 사회라는 원칙이 준수되도록 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이후로 정치계, 기업계, 교육계 할 것 없이 '공정 사회'가 핵심 어젠다가 되었고 바야흐로 정의의 물결이 흐르는 듯이, 공정에 어긋나는 것들은 연거푸 철퇴를 맞고 물러서는 광경을 보게 되었다.

그런데, 가만 보면 좀 이상하기도 하다. 대통령과 정치권이 '공정'이란 화두로 국정의 주도권을 잡긴 했지만 사실은 이명박 대통령은 실용주의를 표방하면서 대통령에 당선되지 않았던가. 실용주의를 전면에 내세워서 노무현 정권의 '명분주의'를 격침시키지 않았던가. 실용주의와 공정 사회는 어딘지 달라 보인다. 실용주의는 현실을 중시하는 반면 공정 사회는 다분히 윤리적인 과정을 포함하고 있으며 목표 지향성이 강하다. 그토록 무성했던 실용주의의 위대한 가치는 사뭇 종적을 감추고 이제는 '공정'이 대세가 된 것에 왠지 의아해진다.

물론 어느 때든 그 시대에 걸맞은 정치철학이 있었다. 현실 정치의 저변이 되는 정치철학을 어떻게 세우느냐에 따라 그 시대의 면모가 결정되었다. 특히 이상국가를 형성시키기 위한 각 시대의 논의는 참으로 각별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공자와 플라톤으로부터 시작되는 동서양의 정치철학은 한 국가의 지향점을 제시함과 동시에, 그것을 구가하지 못했을 때는 실패한 시대로 역사책에 기록하지 않았던가. 이를테면 공자는 세상에 도둑이 없어 대문조차 잠글 필요가 없는 사회를 대동(大同)이라 했고, 공정한 법이 도둑을 잡아 대문을 잠그지 않아도 될 만한 세상을 소강(小康)이라 했다. 이후 유가에서는 성왕이 백성을 다스리는 사회를 가장 아름다운 세상으로 보았다. 유교권 국가들은 근대자본주의가 도착하기 전까지 제왕의 품성과 덕치(德治)의 정도로 정부의 성공과 실패를 가늠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서양의 경우에는 훨씬 더 다양하게 이상국가에 대한 정치철학이 개진되었는데, 우리가 잘 아는 플라톤의 철인정치로부터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와 근대 이후에 나타난, 노동을 하면서 누구나 행복을 누리는 푸리에의 '팔랑쥬'와 마르크스의 이상사회에 이르기까지 실로 집요하고 심도 있는 정치철학이 나타났고, 현실적인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실험하기도 했다.

이야기가 너무 커졌다. 하지만 이렇게 커진 이유는 현재 정치권으로부터 내려오는 '공정 사회'라는 화두도 만만찮은 정치철학과 관계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공정'이라는 것은 국정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슬로건이 되기에 곤란할 만큼 아름다운 말이다. 앞서 살핀 이상국가로 가는 길목의 대부분에는 법적, 통치적, 윤리적 도구로 '공정'이란 말이 핵심적으로 사용되었던 것이다.

'공정'이란 개념은 다양하게 해석될 수도 있겠지만, 실용주의나 '명분주의'처럼 한 정부의 통치 슬로건으로 사용되기에는 너무 아깝다. 이 말이 짧은 기간에 종료되는 한 정권의 차원을 넘어 우리 사회의 보편적인 지표가 되기를 사무치도록 희망한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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