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결혼이주여성 "남편과 몇살 차이냐 왜 묻나요"

성·인종차별문제 토론회

대구이주여성인권센터 주관으로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교육실에서 열린
대구이주여성인권센터 주관으로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교육실에서 열린 '한국 사회 성·인종 차별 문제'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다양한 의견을 내놓고 있다. 성일권기자 igsung@msnet.co.kr

한국 사회의 성(性)과 인종에 대한 차별은 얼마나 누그러졌을까. 이달 15일 대구이주여성인권센터 주관으로 열린 '한국 사회 성·인종 차별 문제' 토론회를 들여다보면 크게 개선된 것 같지는 않다.

결혼이주여성과 유학생, 이주 노동자들의 사례를 중심으로 열린 '한국 사회 성·인종 차별 토론회'에서 토론자들은 "한국의 성과 인종에 대한 차별은 아직은 심각한 수준"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베트남 출신으로 한국인 남자와 결혼한 팜티검장 씨는 "한국 사람들은 외국인 며느리를 만나면 꼭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 몇 살이냐? 남편은 몇 살이냐? 한국에 오니까 좋으냐? 베트남에는 자동차가 있느냐?'고 묻는다" 며 "한국인들끼리라면 결코 하지 않을 질문을 불쑥불쑥 해서 난처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은 공단에서 산업기능 요원으로 복무했던 김진섭 씨는 "한국인끼리는 모르는 사람들이 처음 만나면 존댓말을 쓰는데 외국인 특히 동남아계에게는 바로 '야, 너'라는 식으로 부르고 반말을 한다" 며 "자신보다 나이가 대여섯 살 많은 외국인에게도 전혀 껄끄러움 없이 반말을 하는 경우를 자주 보았다"고 말한다.

태국 출신으로 한국인 남자와 결혼해 한국으로 이주한 나감시리 스리준 씨는 "'한국이 좋아? 한국에 왜 왔어? 태국에는 가스레인지 있어?'라는 등의 질문을 받으면 굉장히 불쾌하다"며 "나는 한국도 좋고, 태국도 사랑한다. 그러나 내게 '한국이 좋아?'라고 묻는 사람은 태국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더라"며 이런 편견은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나감시리 씨는 또 자신이 만났던 인도네시아 며느리를 예로 들면서 "한국 사람들은 피부색이 검은 사람이 외출하면 더럽다는 인식을 갖고 있으며 한국에서의 삶이 인도네시아에서의 삶보다 무조건 좋지 않으냐는 말을 자주 듣게 된다"고 말한다. 또 공원에서 아이와 함께 놀고 있었는데 한국인 아이가 옆에 와서 어울리자 그 한국인 아이의 엄마가 '외국인이다'며 떼어놓으려고 해서 속상해하는 모습을 보았다고 말했다.

차별은 외국인 며느리에게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외국인 남성과 결혼한 한국인 여성들도 차별적인 시선에 시달린다. 동남아 출신의 남자와 결혼한 장영지(가명) 씨는 "정서와 가치관이 잘 통한다고 생각해서 결혼했는데 남편이 외국인이라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고 말한다.

"한국인 남편이 아시아 국가 여성을 신부로 맞아서 아내의 한국 비자를 신청하면 특별한 결격사유가 없는 한 비자가 나온다. 그러나 한국인 아내가 외국인 남자를 만나 비자를 신청하면 문제가 달라진다. 남자가 한국에 가서 집에만 있을 리 없고 밖으로 다니면서 무슨 일을 하고 다닐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녀는 "한국 여성과 결혼한 외국인 남성을 잠재적 위험 인물로 간주하는 것 같았다"며 "외국인 남자가 한국 여성과 결혼해 입국하려면 재정적인 능력이 있음을 증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 씨는 또 "미국, 캐나다, 영국, 호주, 독일 등 선진국의 백인 남자들과 결혼한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그렇게 대단한 일을 했어?' '아이들 영어 걱정은 없겠다'는 반응을 보이지만 동남아 남성과 결혼한 여성에게는 '부모님이 반대 안 하셨어?' '기왕 하려면 영어권 사람하고 하지 그랬어?'라는 말을 듣게 된다"고 말했다. 그녀는 동남아 남성과 결혼한 자신이 한국 사회로부터 받는 메시지는 '야, 너 왜 여기 있어? 빨리 네 남편 나라로 가'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임현희 대구여성가족정책연구센터 연구원은 "이주여성은 인종과 민족이 달라 소수자로 전락한 동시에 여성이라는 이중적 불리함에 직면해 있다"며 "한국 사회 특유의 가부장적 구조에서 저항의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최대희 대구교육대 교수는 한국 사람들의 이주민에 대한 차별은 스킨헤즈나 신나치주의자와는 다르다고 분석한다.

"한국에서 피부색이 이주민 차별의 원인은 아닐 것이다. 백인인 이다도시가 경험한 한국 사회는 정이 많고 배려가 깊은 사회가 아니었나? 흑인도 마찬가지다. 아데바요르 같은 피부색이 검은 유명한 축구 스타는 한국 축구팬들에게 혐오감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할리우드의 여성 섹시 스타에 대해서도 한국 남성들은 비호의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

그는 "천민자본주의의 정립으로 돈 없고 '빽' 없는 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차별의식이 우선일 것이다. 피부와 언어는 편견과 차별을 조금 더 강화하는 작용을 했을 뿐"이라고 평가한다. 외국인에 대한 차별은 그들이 한국 사회에서 가장 약한 고리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한국인들 사이에서도 힘없고 가난한 사람은 무시당하기 십상이다. 이주민에 대한 차별 문제는 혈통과 인종보다 개인의 문화적 정체성이 관건이다"며 "인종차별 문제에 접근할 때 피부색이라는 부차적 요소를 주 원인으로 삼을 경우 우리 사회 전체를 포괄하는 사회적 문제가 은폐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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