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논단] 사라지는 지역 서점

값싼 상품 찾는 개별 소비행위, 토착 기업'직장 없애는 결과로

18세기 후반 북경을 방문한 조선 사신단은 거창하고 화려한 도시에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놀란 곳은 유리창(琉璃廠)이었다. 명대에 유리를 만드는 공장이 있었던 이곳에는 18세기 후반 거창한 서점가가 형성되어 있었다. 더욱이 1772년 '사고전서'를 편찬하기 위한 사고전서관(四庫全書館)이 북경에 설립되자, 중국 출판의 본산지인 강남 지방에서 책이 유리창 서점가로 밀려들었다. 사고전서관에 납품하기 위해서였다. 하여, 유리창은 서점이 빽빽이 들어선 세계 최대의 서점가가 된다. 유리창은 골동품과 서화의 집산지이자 지식인들이 몰리는 곳이었으니 유리창은 일종의 복합적 문화공간이기도 하였다.

1778년 유리창을 방문했던 박제가는 유리창의 서점가를 보고 조선에는 서점이 없으며 다만 책 파는 행상이 하루 종일 돌아다녀도 책 한 권 팔기 어렵다며 한탄하였다. 박제가의 말처럼 서울에는 서점이 없었다. 서점은 19세기가 되어서야 서울 시내에 몇 군데 생겼을 뿐이다. 그러다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와서 서구 근대문명을 수용할 필요를 느끼자 신식 연활자본 서적들(주로 일본어를 번역한 책이다)이 쏟아져 나왔고 이것을 공급하는 서점 수십 곳이 서울을 비롯한 주요 도시에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이후 출판사와 서점은 기본적으로 영리를 목적으로 삼기는 하였지만 한편으로는 근대적 지식과 교양을 공급하는 문화적 기구로서의 색채도 짙었다.

불과 십수 년 전만 해도 동네의 약간 번화한 곳 어디나 작은 서점이 있었다. 잡지와 신간 서적, 학습참고서를 팔았고 때로는 대본소를 겸하는 곳도 있었다. 이 작은 서점들은 20세기 이후 한국인에게 지식과 교양을 공급하는 거의 유일한 채널이었다. 조금 큰 시내의 서점은 또 시민들의 약속 장소의 구실도 하였다.

갑자기 서점 이야기를 꺼낸 것은 최근 지방 도시에 있는 큰 서점들이 하나 둘씩 없어진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부산의 한 서점 경우 생긴 지 30년 만에 문을 닫게 되었다. 아쉽기 짝이 없다. 지방 서점의 폐업이 인터넷 서점과의 가격 경쟁력에서 밀렸기 때문이란 소식을 듣고 착잡한 기분이 들었으며 질문해야 할 문제가 떠올랐다. 우리의 소비 행위의 절대적 근거인, 동일한 상품이면 보다 값싼 것을 택한다는 원칙이, 궁극적으로 우리 전체에게 이로운가 하는 문제다. 말하자면, 최근 문제가 된 이마트의 피자가 보통 피자가게의 같은 품질의 피자에 비해 확실히 싸다고 하여 이마트 피자를 더 소비하게 된다면 동네 피자 가게는 모두 문을 닫을 것이고 거기서 당연히 일자리를 잃는 사람이 생겨날 것이다. 한편 그 값싼 책값과 피자는 외면적으로 경영 개선이나 때로는 기술 혁신을 들먹이겠지만 궁극적으로는 누군가의 노동에 돌아가야 할 대가, 곧 임금을 줄인 데 근거할 것이다. 즉 값싼 노동력이 값싼 가격의 배후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노동력을 헐값에 팔 수밖에 없는 사람들은 다름 아닌 우리와 우리의 이웃들이다. 더욱 비극적인 것은 책방이나 피자가게뿐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곳에서 동일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동네 빵집, 동네 슈퍼가 사라지고 있고 미구에 사라질 것이다. 결국 거대자본 외에는 아무 것도 살아남지 않는다는 것이다. 범상한 우리는 모두 대기업의 값싼 노동자로만 존재할 것이다. 이 말을 하자니, 우울해진다!

또 하나의 문제는 지역에 뿌리박은 토착 기업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토착 기업이 사라진다는 것은, 지방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 사라지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것은 내가 가르친 학생들이 제 고장에서 일터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어찌 답답한 일이 아니겠는가.

영화 '유브갓메일'에서 주인공 맥 라이언은 대형 서점 때문에 자기의 작은 어린이책 전문 서점을 잃고 만다. 다만 맥 라이언은 그 대형 서점의 사장 톰 행크스를 애인으로 얻고 그 대형 서점에서 일자리를 찾는다. 하지만 이것은 로맨틱 코미디일 뿐이다. 우리가 값싼 상품이라면서 소비하는 개별적 행위가 결국은 나의 노동력의 값을 떨어뜨리고 내 직장을 없애는 결과를 낳는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가. 아마 정부와 정치인들은 이 물음에 답해야 할 것이다.

강명관(부산대 교수 한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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