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초빙교원에 시간당 임금 주나?…달라질 것 없어요 "

시간강사들, 정부 처우 개선책에 냉소

"한때는 시간강사를 교수가 되기 위한 수련 과정이라 여겼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엄연한 직업군이거든요. 그런데도 정부는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어요."

1993년부터 지금까지 시간강사로 뛰고있는 이태영(가명·44) 씨에 대해 다른 강사들은 우스개소리로 '재벌강사'라고 부른다. 그는 거의 모든 학기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일주일 내내 강의한다. 대구, 안동, 상주, 경산, 부산 등 이 씨의 강의실은 영남권 전역이다.

이 씨가 일주일에 소화해야하는 강의는 모두 21시간. 월 300만원 남짓한 강의료를 손에 쥐지만 방학때를 제외하면 연봉은 2천400만원 가량이다. 건강보험 가입까지 해 일반 시간강사들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풍족(?)한 편이다. 일반 시간강사들의 평균 연봉(주 9시간 기준)은 1천12만원, 건강보험 가입률은 고작 2.6%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씨 역시 '보따리 장수 신세는 마찬가지'라며 한숨을 쉰다. 어엿한 박사님이자 학교에서는 교수님으로 불리는 이 씨 또한 강의가 없는 방학 시즌이면 마이너스 통장을 써야 하고, 두 아이를 학원에 보내지 못할 정도다.

'보람'도 없다. 이 씨가 타고 다니는 승용차의 4년간 주행기록은 18만9천㎞. 말 그대로 '보따리 장수'다. 자연히 교과 연구가 어렵다. 주말에 연구하는 것이 전부다.

불안한 고용 때문에 고민한 게 1, 2년이 아니다. 4년간 강의하고도 일언반구 없이 강의가 없어지는 일이 다반사다. 애초에 근로계약이 없었으니 해고 통보라는 것도 있을 리 없다. 그러던 중 교수 자리를 제안하며 금전 제공을 암시하는 학교 관계자와 마주하기도 했다. 총장 면접을 앞두고 만난 학교 관계자는 '사는 게 힘들지 않느냐, 교수가 되고 나면 인사치레를 할 수 있느냐'는 등의 말로 이 씨의 의중을 물어왔다. 인문학을 가르치는 학자로 돈을 주고 교수 자리를 살 수는 없었다.

이런 그에게 25일 대통령직속 사회통합위원회가 내놓은 대학 시간강사 처우 개선안은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 이 씨는 "별반 달라질게 없다"며 냉담했다. '시간강사'라는 이름 대신 '초빙교원' 등으로 이름만 바뀌어 다시 저임금 노동 구조가 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또 국·공립대의 경우 현재 4만3천원 수준인 시간당 강의료를 2013년까지 8만원 수준으로 올리고, 현행 학기 단위 계약도 최소 1년 이상으로 늘려 고용 안정성을 높이기로 했다지만 사립대의 경우 기약이 없기 때문이다. 정부가 연구보조비 지원 등을 통해 강의료 인상을 유도할 수 있다지만 대학이 끝까지 버틴다면 아무런 제재 수단이 없다.

이 씨는 "정부의 개선안 역시 시간으로 임금을 주는 식이다. 시간당 급여를 받는 것은 시간강사이지 교원이 아니다"며 "교원이라는 이름만 줄 게 아니라 그에 맞는 처우와 신분보장이 따라야 제대로 된 대책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한편 한국비정규직교수노조는 26일 이주호 교과부 장관에게 "사회통합위의 방안은 시간강사들의 처우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의견을 전달했고, 교과부는 정책토론회를 거쳐 12월 초 정부안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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