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300년 만에 부활한 香娘

'18세기 조선 서민 여성 가운데 가장 많이 조명받은 두 사람의 여성은?' 선뜻 대답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수많은 조선의 상류층 여성도 아닌 '서민 여성' 중에서 꼽으라면 더욱 어려울 것 같다. 이론(異論)의 여지가 있겠지만 국문학계의 한 논문에 따르면 주인공은 경북 선산 출신의 박향랑(朴香娘'1683~1702)과 최근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대표 사례로 많이 거론되는 제주 출신의 여자 거상(巨商) 김만덕(金萬德'1739∼1812)이라고 한다.

김만덕은 조선 영조임금 시절 제주도를 덮친 흉년으로 기아에 허덕이는 제주민들을 살리려고 전 재산을 내놓은 훈훈한 사연의 주인공으로 TV 드라마나 책, 세미나, 제주도 축제 등을 통해 비교적 널리 알려졌다.

그러나 김만덕보다 30여 년 앞서 20살 어린 나이에 죽은 박향랑은 그동안 고향인 선산(구미)에서조차 제대로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물론 2004년 '향랑, 산유화로 지다'라는 책(정창권 지음)이 세상에 나오기도 하는 등 국문학계에서는 향랑에 관한 적잖은 논문들이 발표되지만 일반인들에게는 여전히 생소할 뿐이다.

향랑은 왜 김만덕에 버금가는 조선 서민 여성의 한 사람으로 손꼽힐까. 선산, 지금의 구미시 형곡동에서 박자신의 딸로 태어난 향랑은 17세에 자신보다 세 살 어린 임칠봉에게 시집갔다. 그러나 남편 학대로 쫓겨났다. 친정에서는 계모의 박대가 계속됐다. 재혼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당시 가부장적 제도의 숨막히는 틀 속에서 갈등하다 결국 자살로 생을 마쳐야 했다. 비운의 여성인 셈이다.

'산유화'란 노래 한 자락을 남기고 두려움에 치마를 덮어쓰고 꽃다운 목숨을 낙동강에 던져야 했던 향랑의 불행과는 달리, 사후 향랑은 열녀(烈女)가 됐고 갑자기 유명해졌다. 많은 선비들이 향랑의 억울했던 속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를 기리는 다양한 작품을 남겼다. 가히 18세기는 향랑의 시대라고 할 수 있을 만큼 '국가적인 열녀'가 됐다. 조선 후기 최대 한문소설의 하나로 거론되는 '삼한습유'(三韓拾遺)는 그 대표적 작품이다.

마침 향랑의 이야기가 그의 사후 300년이 지난 지금, 구미의 금오오페라단에 의해 구미문화예술회관에서 30일과 31일 오후 7시 두 차례 창작 오페라 '누가 향랑을 아시나요'로 다시 태어난다. 어떤 형태로 모습을 선보일지 궁금하다.

정인열 중부지역본부장 oxe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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