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바깥 활동을 하면서 처음 만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그때마다 나는 '안녕하세요,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는 아무개라고 합니다'라며 고개 숙여 인사한다. 상대방도 여기에 응하며 내게 명함을 건넨다. 나도 똑같은 행동을 한다. 두 사람은 주고받은 명함을 몇 초간 살핀다. 그리고 그 속에서 친밀함을 가질 만한 이야기를 열심히 찾는다. 이를테면 '그럼 혹시 A씨도 알겠네요?' 'B동네에 사시면 요즘 지하철 공사 때문에 불편하시겠어요'와 같은 말이다. 나는 마지막으로 '잘 부탁드립니다'라는 인사로 첫 만남을 마무리한다. 생각해 보면, 참 무책임한 관용어이다. 실제로 그 사람이 뭘 부탁하더라도 매끈하게 도와줄 능력이 내겐 없고 내가 부탁할 만큼 그 사람이 편하지도 않은데 말이다.
새 연재를 시작한다. 식견과 필력을 두루 갖춘 많은 분들이 지나간 이곳을 이어받은 게 나로선 과분하다. 지금까지 나는 여러 지면에 연재물을 실어왔다. 일간지, 주간지, 월간지에 계간지까지 참 다양한 글을 썼다. 그리고 그 매체들의 흥망성쇠도 옆에서 지켜봤다. 어떤 곳은 후속 필진을 제대로 못 구하는 바람에 나 혼자 몇 년간 글을 쓰기도 했다. 다른 어떤 곳은 야심 차게 연재를 시작하자마자 잡지가 폐간했다. 당연히 원고료도 못 받았다. 매일신문은 그런 매체들과 달리 체계가 잘 잡힌 신문이다. 이미 틀이 잡혔다는 사실, 내가 이 질서와 전통 속에서 무슨 글을 써야 할지 고민하는 이유다.
어떤 내용을 다루든 연재는 글 쓰는 사람에게 형벌인 동시에 축복이다. 매번 돌아오는 마감일은 우리의 마음을 짓누른다. 하지만 글이 모이면 하나의 생각 줄기가 만들어져 글쓴이에게 선물처럼 돌아간다. 따지고 보면, 소설가 박경리의 '토지'나 만화가 이원복의 '먼 나라 이웃 나라'도 연재라는 강제력이 있었기에 완결이 가능했다. 그 책들은 혁신적인 면모와 상투적인 부분이 뒤섞여 있기도 하고, 진보적인 관점에서 국수적인 시각으로 점점 변해가는 이데올로기도 보인다. 내가 그걸 비평할 입장은 못 된다. 나 자신이 짧은 글 하나도 조리 있게 쓸 수 없는 까닭에서이다. 또한 그러한 관점의 변화도 한 작가가 살아가는 인생 여정의 일부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두 달이라는 길지 않은 기간은 내가 한 가지 주제에 집중하여 글을 쓸 수 있게끔 할지도 모르겠다.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겠지만, 문화·예술이 항상 고상한 것만은 아니다. 나는 예술계와 학계의 언저리에 살면서 그 속에 있는 이중성을 늘 흥미롭게 지켜봐 왔다. 비판적인 관찰은 우선 나 자신부터 비추어 보는 것에서 시작된다. 염치없지만,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윤규홍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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