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짝퉁도 감쪽같으면 좋아?…'모방공화국' 대한민국

판매자도 구매자도 거리낌없다

지난달 말 대구세관은 3만여 점의 밀반입 가짜 해외 명품을 압수했다. 짝퉁이 근절되지 않는 이유는 돈만 되면 불법도 마다 않는 얄팍한 상술과 그릇된 명품 소비심리가 사그라지지 않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중국에서 판매되고 있는 짝퉁 시계와 가방들. 짝퉁이 판을 치고 있는 국내 상황을 감안해 보면 중국의 짝퉁 판매를 나무랄 입장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다.
지난달 말 대구세관은 3만여 점의 밀반입 가짜 해외 명품을 압수했다. 짝퉁이 근절되지 않는 이유는 돈만 되면 불법도 마다 않는 얄팍한 상술과 그릇된 명품 소비심리가 사그라지지 않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중국에서 판매되고 있는 짝퉁 시계와 가방들. 짝퉁이 판을 치고 있는 국내 상황을 감안해 보면 중국의 짝퉁 판매를 나무랄 입장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다.

이달 10일 수억원대의 가짜 해외 명품을 판매한 혐의로 박모(36) 씨와 김모(24) 씨가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에 따르면 박 씨는 대구 수성구에 있는 자신의 창고를 고쳐 비밀 매장을 설치한 뒤 단골 손님을 상대로 가짜 명품 가방이나 지갑 등을 팔아온 혐의를 받고 있다. 김 씨도 자신이 운영하는 액세서리 매장에 설치한 비밀 창고에서 해외 명품 상표를 부착한 지갑·벨트·신발 등을 판매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28일에는 시가 200억원 상당의 가짜 해외 명품을 밀수입한 혐의로 이모(33) 씨 등 2명이 구속되고, 배모(47) 씨 등 2명이 불구속 입건됐다. 대구세관에 따르면 이들은 중국 광저우 짝퉁시장에서 3억여원을 주고 구입한 시계·안경·의류·가방 등 가짜 해외명품 3만여 점을 중국산 인형으로 속여 밀수입한 혐의를 받고 있다.

2010년 대한민국, 여전히 '짝퉁(모조품) 천국'이다. '일본이 모방의 천재라면 한국은 모방의 천국이다'는 말이 있을 정도. 지난해 전국 자치단체에서 적발한 위조상품 단속 건수는 3천770건으로 2008년의 2천564건에 비해 47% 증가했다.

유명 가짜 상품을 제조하는 것은 물론 베끼기 문화가 사회 곳곳에 스며들고 있다. 가요계에서는 끊임없이 표절 시비가 제기되고 있으며 학교에서도 잊혀질 만하면 논문 베끼기가 문제시되고 있는 것이 우리나라의 현주소. G20 정상회의를 개최할 만큼 국력은 커졌지만 외국인이 바라보는 한국의 짝퉁문화 역시 'G20급'이다. 실제로 지난달 타결된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서 짝퉁 문제는 주요 이슈였다. EU는 우리나라를 중국 등과 함께 '세계 5대 위조품 제조국'으로 몰아붙이며 유럽 명품에 대한 상표권 보호를 강화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으니 말이다.

◆중국 나무랄 입장이 못 된다

한국 상품을 베낀 중국산 짝퉁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중국뿐 아니라 제3국에서도 중국산 짝퉁들이 한국산으로 둔갑해 판매되면서 국가 이미지와 해당 기업에 큰 타격을 입히고 있다. 특허청 자료에 따르면 우리 기업이 해외에서 지적재산권을 침해당하는 사례는 매년 급증(2008년 80건에서 2009년 123건)하고 있다. 특히 중국의 침해 비율이 58.3%를 차지하고 있어 다른 국가에 비해 월등히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특허청은 해외시장에서 유통되는 짝퉁으로 인해 국내 기업이 입는 피해액이 한해 약 250억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했다.

하지만 국내 상황을 살펴보면 과연 중국을 비난할 처지가 되는지 의문이 든다. 중국 못지않게 국내에서도 지적재산권 침해가 성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짝퉁 유통의 일번지는 서울의 동대문시장과 이태원이다. 대구에서는 교동시장, 야시골목 등에 가면 짝퉁을 공공연하게 만날 수 있다. 해외 유명 상품의 모조품뿐 아니라 국내 브랜드 짝퉁도 많이 나와 있다. 가격은 해외 유명 브랜드 짝퉁의 경우 보통 정상가의 10~20% 선에서 판매되고 있다. 국내 브랜드 짝퉁은 비싼 것은 정상 제품 가격의 절반에 이르는 것도 있다.

아이러니한 것은 짝퉁 매매가 불법이지만 판매자도, 구매자도 거리낌없이 짝퉁을 사고판다는 사실이다. 대구시는 2008년 116개 업소에서 1천50여 점을 단속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277개 업소에서 2천183점의 위조 상품을 단속했다. 하지만 단속에는 한계가 있다. 짝퉁 판매가 워낙 광범위하게 이루어지는데다 단속 인력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인터넷에서도 짝퉁 판매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짝퉁의 주요 유통 채널이 오프라인에서 최근 온라인으로 옮겨가는 추세다. 특히 상대적으로 규제가 느슨한 오픈마켓이 주요 짝퉁 판매처로 급부상하고 있다. 오픈마켓은 기존의 온라인 쇼핑몰과 다르게 개인 판매자들이 인터넷에 직접 상품을 올려 매매하는 사이트를 말한다. 개인들이 직접 거래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짝퉁 판매 가능성이 높아진다.

특허청에 따르면 2008년 옥션과 G마켓, 11번가 등 대형 오픈마켓 4곳에서 적발된 위조품 판매 건수는 1만505건, 액수로 따지면 85억원이 넘는다. 이를 실제 명품가격으로 환산할 경우 적어도 500억원대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적발되지 않는 것 등을 합치면 실상은 2천500억~3천억원대 규모라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판단이다. 오픈마켓이 짝퉁 판매의 주요 타깃이 된 이유는 적발된 사업자가 다른 사람 아이디로 등록해서 짝퉁을 팔거나 다른 오픈마켓으로 옮겨가 짝퉁을 판매할 경우 현실적으로 막을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들은 "직수입 등의 이유를 내세워 명품을 터무니없이 싼 가격에 판매하는 곳이 있으면 일단 짝퉁을 의심해야 한다. 명품일수록 판매 관리가 엄격히 이뤄지기 때문에 지정 판매 업체가 아니면 상품을 공급받을 수 없고 세일도 잘 하지 않기 때문에 가격이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 20% 이상 가격이 싼 것은 상당수가 짝퉁으로 봐야 한다"고 말한다.

◆짝퉁 종량제 봉투에 짝퉁 기업까지

짝퉁 대상이 해외 유명 상품의 가방·지갑·핸드백·운동화·운동복 등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짝퉁은 생활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최근 지자체들은 짝퉁 종량제 봉투로 인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한 해 동안 사용되는 종량제 봉투는 전국적으로 약 8억7천만 장. 이 중 일부는 불법제조업자가 제작·유통시키는 짝퉁 봉투다. 환경부 집계 결과 2004년부터 올 6월까지 적발된 짝퉁 봉투는 98만7천여 장에 이른다. 이에 따라 지자체들은 짝퉁 봉투 유통을 막기 위한 대책 마련에 고심을 하고 있다. 대구시도 위조 방지를 위해 종량제 봉투 제작 시 특수형광잉크를 사용하거나 홀로그램을 부착하는 방안 등을 검토할 정도다.

짝퉁 기업도 있다. 짝퉁 기업이란 특정 기업을 사칭해 편법 영업행위를 일삼는 업체들로 사칭 대상 기업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별개 법인들이다. 최근 KT는 짝퉁 기업과 전쟁을 벌이고 있다. 마치 KT 자회사처럼 홍보를 하는 바람에 피해를 입는 시민들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8월에는 고금리 대부업체들이 저소득·저신용자를 위해 출시한 신용대출 상품명(희망홀씨, 햇살론)을 도용해 고객들을 유인하다 금융감독원에 적발되기도 했다.

또 지난해에는 아예 유사 상품을 판매하는 대리점까지 등장했다. 서울의 한 의류업체는 전국에 수십여 개의 대리점을 두고 해외 유명 상품과 유사한 상표를 부착한 옷을 판매하다 적발됐다. 이 업체는 매장마다 2천여만원의 보증금을 받고 대리점 형태의 매장을 전국적으로 20여 곳 개설한 것으로 알려졌다.

◆명품, '가짜라도 좋아요'

지자체뿐 아니라 관세청 등에서 지속적으로 단속을 하고 있지만 짝퉁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갈수록 짝퉁이 확산되고 있다.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돈만 되면 불법도 마다 않고 짝퉁을 만드는 얄팍한 상술과 그릇된 명품 소비심리가 사그라지지 않기 때문으로 분석한다.

특허청 한 관계자는 "소비문화가 고급화·다양화함에 따라 신규 명품 브랜드가 계속 등장하면서 이를 모방한 짝퉁도 덩달아 늘어나고 있다. 명품 선호 현상이 사그라지지 않아 위조품 생산 및 유통도 감소하지 않고 있다"고 분석했다.

경제학자들은 비합리적인 '베블렌효과'(과시욕 때문에 가격이 비쌀수록 수요가 늘어나는 현상)에서 원인을 찾고 있다. 실속보다는 겉으로 드러나는 것을 중시하는 문화가 만연하면서 명품 선호 현상이 나타나게 되었고, 명품을 구매할 형편이 되지 않으면 짝퉁이라도 구입해야 직성이 풀리는 소비현상으로 이어지게 되었다는 것.

심리학자들은 '거짓합치효과'(다른 사람도 나처럼 행동한다고 믿는 것)로 설명하고 있다. 짝퉁을 구입하는 사람들은 보통 '남도 나처럼 짝퉁을 구입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짝퉁 구입에 따른 죄책감을 떨쳐 버리고,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돈으로 보여줄 수 있는 것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고 싶어하고 명품을 가지면 중요한 사람이 된다는 착각이 명품에 집착하는 소비 현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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