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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고리 끊을 힘 갖추기 상담기관 찾으면 큰 도움" 강혜숙 대구이주여성인권센터 대표

"아직도 6가구 중 1가구는 신체적인 가정폭력에 시달리고 있어요. 여성에 대한 폭력은 결국 성평등의 문제입니다."

대구이주여성인권센터 강혜숙 대표는 20여 년간 가정폭력의 현장을 지켜봤다. 대구여성의전화, 대구여성회, 대구이주여성인권센터를 거쳐왔지만 가정폭력의 실태는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그동안 전문직 여성이 크게 늘고 사회적으로 성공하는 여성이 부각되지만 아직 대다수 여성들의 삶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가정폭력도 폭력'이라는 인식이 겨우 생겨난 정도다.

"20년 전만 해도 가정폭력은 '남의 가정사'라고 생각해 전혀 개입할 수 없었어요. 당연히 누군가에게 하소연할 수도 없는 분위기였죠. 지금은 다행히 여러 상담기관 등이 생겨나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주는 정도입니다."

폭력의 이유는 다양하다. '살림을 못한다' '돈을 많이 쓴다' 등 가해자들은 갖은 이유를 댄다. 피해자는 그것을 고치려고 무던히 애쓴다. 하지만 그것은 가해자가 분노를 다스리지 못하거나 질병에 원인이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개인적인 노력으로 해결하기 힘들다.

그렇다면 지난 20년 동안 사회 전체가 크게 바뀌었다는데 가정폭력은 제자리인 이유는 무엇일까. 강 대표는 "가정폭력은 남녀 차별 문제를 극단적으로 보여준다"고 단언했다. 더 많은 권력을 가진 사람이 약한 사람을 통제하기 위해 폭력을 휘두른다는 것. 그렇게 시작된 가정폭력은 가정 내 성폭력으로까지 이어져 심각성을 보여준다.

그는 가정 내 권력 차이는 사회의 불평등에서 온다고 해석한다. "여성 노동자의 70%가 비정규직 노동자이고 동일한 일을 해도 여성이 남성의 60%에 불과한 임금을 받고 있어요. 사회 전반의 불평등이 해소되지 않는데 가정 내 불평등이 해소되겠어요?"

최근 부각되고 있는 이주여성에 대한 가정폭력 역시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10살 이상의 나이 차이, 국가 경제력 차이, 언어 문제가 더해지면서 이주여성은 더욱 약자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 이주여성의 경우 남편의 식구들과 함께 사는 경우가 많아 시댁 식구에 의한 가정폭력도 적지 않다.

그는 2004년 당시 청주여자교도소에 살인죄로 수감된 수감자 249명 가운데 53%가 가정폭력에 시달리다가 정당방위 또는 여러 가지 이유로 남편이나 애인을 살해한 여성들이라는 통계를 예로 들었다. 누군가 한 명이 죽지 않으면 끝나지 않을 만큼 심각한 것이다. '평화로운 가정'이라는 편견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다는 것.

강 대표는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여성들은 폭력의 고리를 끊고 나오는 힘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것을 위해서 전문기관에서 상담을 받는 것이 좋다고 조언한다. 사회적으로 가정폭력을 근절하기 위해 강 대표는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는 가치'에 대한 교육이 어릴 때부터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어릴 때부터 타인에 대한 배려, 인권, 평등에 대한 가치를 배운다면 폭력이 나타날 여지가 훨씬 줄어들지요. 사회적인 문제인 만큼 사회가 나서서 폭력에 대한 옳은 가치를 심어주어야 합니다."

최세정기자 사진·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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