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사랑의 온도계'가 얼어붙었다.
지난달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대한 보건복지부 감사에서 일부 지회가 비리를 저지르고, 예산을 제멋대로 집행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시민들의 참여가 크게 줄었고, 대구경북 자선단체 곳곳에서도 온정의 손길이 줄었다는 하소연이 쏟아지고 있다.
◆공동모금회 모금액 급감=사회복지공동모금회 대구·경북지회는 시도민들이 등을 돌린 것을 실감하고 있다. 지난해 11월말 기준 76억4천100만원에 달했던 공동모금회 경북지회 모금액은 올해 같은 기간에는 42억400만원으로 절반 가까이 급감했다. 대구지회 역시 지난해 46억5천만원에서 올해 45억4천200만원으로 1억여원 줄어들었다.
공동모금회의 성금 횡령 이후 모금회를 향한 불신이 팽배해지면서 모금회측은 매년 외부에 설치해 왔던 사랑의 온도계를 사무실로 옮겼다. 경북지회는 지난해 도청 앞에 높이 5m인 대형 온도계를 설치했지만 올해는 아예 없앴다.
줄어든 모금액 탓에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저소득층의 생계비를 지원했던 공동모금회는 사업 운영에 차질을 빚고 있다. 경북지회 모금팀 이정근 대리는 "모금액이 많았던 경북지회는 저소득층에게 의료비와 생계비 등을 지급하는 사업을 많이 했다. 저소득층 월동 난방비나 긴급 지원 등 기초복지사업을 축소하려니 마음이 무겁다"고 걱정했다.
모금액이 줄면서 여파가 무료급식소에까지 미치고 있다. 보림의집 노인무료급식소에는 지난 9월까지 매달 25만원씩 공동모금회측을 통해 지정 기부금을 받아오다가 비리가 터진 이후 기부금을 받지 못하고 있다.
무료급식소 백미화 사무장은 "한 달에 들어오는 후원금이 50만원인데 절반이 사라졌다. 절 신도분들이 돈을 모아줘 14일 다행히 김장을 할 수 있게 됐다"며 "순수하게 봉사하는 무료급식 단체까지 사람들이 믿지 않으니 속이 너무 상한다"고 말했다.
◆자선단체 온정 손길 '뚝' =대한적십자사 경북지사는 올해 처음으로 KBS와 방송 모금 사업을 진행 중이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다. 이달 1일부터 13일까지 모금액은 1천200여만원이 전부다.
이곳 모금팀 김상수 대리는 "물의를 일으킨 공동모금회 대신 우리와 손을 잡은 방송 관계자가 예년과 달리 성금이 기대만큼 모이지 않는다.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곳은 많은데 뜻대로 모금이 되지 않으니 안타깝다"고 전했다. 이번달부터 본격적으로 기업 대상 모금 활동을 펼칠 대한적십자사 대구지사도 걱정이 크다.
대구지사 관계자는 "다른 복지단체의 기부금이 줄어들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며 "혹시나 결연을 맺은 조손가정에 지난해 만큼 도움이 돌아가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우려했다.
대구 쪽방상담소도 나눔 활동에 참여하는 신규 자원봉사자들이 눈에 띄게 줄었다고 말한다. 쪽방상담소는 연말마다 '동절기 희망 캠페인'을 펼치고 있지만 올해는 자원봉사를 문의하는 신규 단체가 단 한 곳도 없는 실정이다. 쪽방상담소 관계자는 "공동모금회 비리여파 이후 시민들은 우리처럼 작은 기관은 당연히 더 비리가 많을 것이라는 불신감이 팽배한 듯하다"며 "쪽방촌에 사시는 분들은 곧장 노숙으로 떨어질 위험에 처해 있는데 일부를 보고 전체를 판단하는 것이 너무 안타깝다"고 한숨지었다.
구세군 대구경북본영이 8일부터 대구백화점 앞 광장 등에 설치한 '빨간 냄비'도 기대만큼 채워지지 않고 있다. 지난해 2억300만원을 모아 목표액(2억1천만원)을 거의 달성한 데 자신감을 얻어 올해는 2억3천만원으로 목표액을 올려 잡았으나 모금이 순조롭지 않은 것. 13일까지 5일 동안 모은 성금은 5천700여만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6천300여만원보다 600여만원 줄어들었다.
구세군 추승찬 지방장관은 "하필 연말을 앞두고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태가 터지는 바람에 행여 모금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예상대로 쉽지 않다"며 "날씨는 쌀쌀하지만 시민들의 온정은 식지 않고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채정민기자 cwolf@msnet.co.kr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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