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특별기고] 대구 오리온스가 떠난단다

김 동 규(영남대 체육학부 교수)
김 동 규(영남대 체육학부 교수)

요즈음 정치, 경제, 문화 등 전 부문에서 어려움에 처한 도시를 이야기하자면, 아마 대구시가 으뜸일 것이다. 한때 정치권력의 한가운데에 있었고, 경제적인 면에서도 섬유도시로서의 기반이 단단했으며, 문화교육도시로서의 명예도 중요한 것으로 여겨졌던 대구시가 이제 내세울 게 없는 도시가 되지는 않았는가 하는 염려를 하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해 보수 성향을 탓하기도 하고, 내륙지방의 비타협적 속성에 의한 것이라는 분석이 있기도 하다. 그러나 대구시민들은 이에 남 탓을 하지 않고, 불이익을 감수하면서도 갈 길을 가는 뚝심이 있다. 최근 어느 코미디 프로에서 '남자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말라'는 멘트로 인기를 얻고 있는 코너가 있듯이, 대구시민은 어렵더라도 자존심을 지키면서 이유 없는 무시만은 허락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면은 스포츠와 관련해서도 다르지 않다. 프로 스포츠의 출현 이전 지역의 고교 야구팀들은 전국을 휩쓸면서 대구시민들을 즐겁게 했으며, 대구시와 분리되기 전 경상북도는 전국체전에서의 성적이 항상 선두 주자였다. 이러한 예들이 대구경북의 자존심을 지켜주었다. 어려움이 있더라도 스포츠를 통해 위안을 얻고, 즐거움을 함께 나누었던 것이다.

1980년대 프로 스포츠가 등장하면서 지역의 이러한 분위기에 변화가 오기 시작했다. 성적에만 연연하였던 프로야구 삼성은 인기 있는 지역 출신 선수들을 트레이드하기 일쑤였고, 초라한 경기장 시설을 대구시와 네 탓 내 탓하면서 아직까지 방치하고 있다. 그렇다고 경기성적이 항상 최상위권이었던 것도 아니다. 이와 함께 많은 염려 속에서 시민구단의 모습으로 출발한 대구FC도 예상한 대로 하위권 성적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팬들의 사랑을 먹고산다는 프로스포츠가 재정여건상 우수 선수를 트레이드하지 않고는 유지될 수 없어 관중석을 채우지 못하고 있음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한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의 프로야구와 축구는 대구시의 상징으로서 사명감을 갖고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그들은 지역에 캠프를 설치하고 연고팀으로서의 명분을 지키려 하고 있다. 그러한 면이 우리에게 믿음을 주고 이웃이라는 생각을 들게 한다. 한때 삼성도 수도권으로의 진입을 타진하였다는 소문이 있었으나, 최근 경기장 신설에 대한 투자를 약속하고 있음은 우리를 배신하지는 않을 것 같다.

가장 대구시민의 자존심을 짓밟은 팀은 최근 지역연고의 이적설이 떠돌고 있는 프로 농구 대구 오리온스이다. 프로의 속성상 지역 연고 문제는 그들의 계산이 우선이라 하더라도, 이적에도 최소한의 명분이 필요하고, 지역과 팬들에 대해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도리가 있다. 최근의 최하위권 성적이 아니더라도 대구 오리온스는 1998-1999 시즌에 32연패의 수모를 겪었지만 지역 팬들은 10개 팀 중 관중동원 면에서 5위를 지켰으며, 8위였던 1999-2000 시즌에는 3위였다. 이는 대구 농구팬들의 충성도, 즉 경기장을 찾는 관중의 발걸음이 어느 지역 못지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구 오리온스가 최근의 관중 수 부실을 탓한다면 4년 연속 최하위권 성적은 어떻게 해명할 것인가? 그리고 대구 오리온스는 팀 명칭만 동양 오리온스에서 바뀌었을 뿐, 대구시에 캠프는 고사하고 사무실 운영도 명분에 불과하다. 또 지역 아마 팀들에 대한 후원도 알고 보면 부끄러운 수준이다. 뒷거래로 시끄러웠던 김승현 사건에 대해서도 한마디의 사과가 없었다.

대구 팬들은 초라한 경기 성적과 아마 팀들에 대한 미흡한 후원, 그리고 부족한 팬서비스에 대해 대구 오리온스를 원망해 본 적이 없다. 경기만 하고 훌쩍 떠나버려도 불평하지 않았다. 또 지역 농구 관계자들을 외면해도 그러려니 하였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들은 떠나갈 궁리만 하고 있었다. 어려운 상황에 위안은 되지 못할망정 시민들에게 허탈감만 안겨주는 프로 스포츠, 이건 도리가 아니다. 그들에게 자존심 운운하는 것도 격에 맞지 않는 주문이 되었다. "아직까지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라고 하면 대구의 팬들이 다행으로 생각하여 좋아할 것으로 여기면 이건 착각도 큰 착각이다. 이제는 아니다.

김 동 규(영남대 체육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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