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지역에서는 '지연이자'(遲延利子)라는 낯선 단어 때문에 몇 달째 떠들썩하다. 이번에 논란이 되고 있는'지연이자'는 2004년 K2 공군기지 인근에 살고 있는 대구 동구와 북구 주민들이 낸 소송에 대한 법원 판결문에서 처음 등장했다. 대법원과 서울고법은 지난해 말과 올해 6월 대구 북구와 동구 주민들이 낸 소음 피해 소송에서 각각 300억여원과 510억여원을 지급할 것을 판결했다. 여기에 지연이자로 각각 200억여원(지급된 지연이자는 170억원)과 280억여원을 주민들에게 주라고 선고했다.
이자 치고는 엄청난 액수다. 이율이 어떻기에 수백억원이 넘는 이자가 발생하는 것일까. 지연이자는 소송에서 1심 판결이 난 뒤 판결금액 지급이 미뤄질 때 이에 대한 이자를 말한다. 통상 연 5%의 지연이자를 매긴다. 하지만 항소와 상고 등 상급법원으로의 소송이 이어지면 지연이자 비율도 늘어난다. 이 경우 20%의 높은 지연이자를 물리도록 규정하고 있다.(최근 25%에서 20%로 줄었다) 이번 동구와 북구 주민들이 낸 소송도 2008년 1심 판결이 났지만 이후 3년여 동안 항소와 상고를 거치면서 지연이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난 것이다.
시중 은행금리와 비교할 때 고리(高利)가 아닐 수 없다. 지역 법조계 한 인사는 지연이자 제도의 설립 취지를 보면 '고리'로 규정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설명이다. 지연이자는 '소송 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에 규정돼 있다. 소송의 지연 방지와 분쟁 처리의 신속한 처리를 위한 게 지연이자의 존재 이유다. 그 때문에 무분별한 항소, 상고 등의 지루한 소송으로 인한 불필요한 법정비용을 아끼기 위해서는 높은 이자율을 매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역 한 법조인은 "민사소송에서 통상적으로 지연이자는 5억원 범위 내외다. 이처럼 지연이자가 수백억원에 이르는 소송은 극히 드물기 때문에 논란이 커진 것"이라고 했다.
원래 지연이자는 판결 금액에 대한 이자라는 측면에서 원금을 갖는 소송의뢰인의 몫이라는 게 법 취지다. 하지만 계약서에 '성공보수'라는 명목으로 명시했기에 소송대리인인 변호사의 몫이 된 것뿐이다. 이 때문에 지역 변호사업계에서는 해당 변호사가 머리를 잘 썼다는 얘기도 나온다.
하지만 계약서상에 지연이자가 변호사 몫으로 돼 있다고 끝날 문제일까. 그것도 지연이자가 뭔지 개념조차 몰랐던 피해 주민들에게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은 지연이자를 변호사가 독식한다는 게 말이다. 수십 년 동안 소음 피해를 고스란히 참아왔던 주민들은 1인당 평균 180만원가량의 보상금을 받는 데 반해 변호사 한 명이 280억원이 넘는 돈을 챙기는 것은 상식적인 선에서 무리가 있다. 그렇다고 승소 확률도 없는 소송을 수년 동안 사비를 털어가며 준비해온 변호사의 노력을 폄하하려는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래서 지연이자를 두고 주민들과 변호사의 사회적 합의가 중요한 이유다. 전국에서도 이번 사건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소리가 들려온다. 군소음 피해 소송은 현재 전국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대구를 비롯해 경기 수원, 충남 서산, 경남 사천, 강원 원주, 충북 청주 등에서 무려 45만여 명의 주민들이 군소음 피해 배상 소송을 했거나 진행 중이다. 따라서 대구의 사건이 다른 지역의 지연이자 문제 해결에도 새로운 지침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 논란의 핵심은 수십 년 동안 소음 피해를 받아온 주민들이라는 점을 양측이 모두 알아야 한다. 아직 2차 소송이 기다리고 있는 만큼 '같은 편'끼리 힘을 소모할 게 아니라 '솔로몬의 지혜'가 절실한 시점이다.
정욱진기자(사회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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