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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산책] 인생을 마무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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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그 광경이다. 오늘도 언제나처럼 화투판이 벌어져 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한결같은 개장률(開場率)을 자랑한다.

계룡산(溪龍山) 꼭대기 체육공원 한 모퉁이가 그들의 아지트다. 강의 시간 전 짬을 내어 산책 삼아 오르다 보면 그때마다 목격하는 일이다. 단 한 번도 공치는 날이 없다. 봄부터 여름, 가을까지는 시원한 파고라 아래서, 겨울에는 따뜻한 컨테이너 안에서 백 원짜리 고스톱판은 어김없이 펼쳐진다. 학창 시절 공부를 그만큼이나 했으면 모두가 일등은 따 놓은 당상이 아니었을까.

구성원들의 면면도 화려하다. 중고등학교 교장, 대학교수, 대기업체 간부, 은행 지점장…, 시쳇말로 하나같이 왕년에는 잘나갔던 인사들이다. 그들의 신분을 캐내려고 일부러 뒷조사를 하거나 했던 건 아니다. 자기네들끼리 서로 그리 부르니 귀동냥으로 알게 되었을 뿐이다.

같은 시간, 계룡산 아래 자리한 M방송 부설 문화강좌에서는 문예창작교실이 열린다. 이삼십대의 젊은이에서부터 장년, 중년, 노년층에 이르기까지 연령대도 다양하거니와, 회사원을 비롯하여 공무원, 교사, 기업가, 성직자, 가정주부 등 직업이며 신분도 백인백색이다.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못한 이가 있는가 하면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까지 있다. 환갑 진갑을 훌쩍 넘기고 내일모레면 고희를 바라보는 나이에도 배움에의 열정을 불태우는 어르신들을 대할 때면 그 진지함에 고개가 숙여진다.

화투놀이와 글쓰기공부, 둘 가운데 어느 편이 더 재미있고 유익한 일인지에 대해선 물론 사람마다 답이 엇갈릴 것이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전자가 결과가 남지 않는 일이라면 후자는 결과가 남는 일이라고나 할까.

몇 년째 글쓰기에 정진하여 마침내 작품집을 낸 분이 같은 연배의 한 지인에게 책을 건네며 한마디 던졌다고 한다. 만날 '죽마고우'(죽치고 마주앉아 고스톱 치는 친구)로 허송세월만 하지 말고 보다 뜻있게 시간을 보내 보라고. 돌아온 대답에 그분은 참담함을 금치 못하였다고 했다.

"안 그래도 신경 쓸 일이 많은 세상인데 그런 골치 아픈 거 뭣 하러 사서 하느냐."

생활의 질 향상과 의학의 발달로 인간의 수명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은퇴한 뒤에 보내야 하는 여생도 그에 비례하여 길어졌다. 이제는 그 기간이 족히 삼사십 년은 된다.

남은 삶을 화투놀이에 바칠 것이냐, 아니면 자기계발에 투자할 것이냐. 어느 쪽이 인생을 보다 의미 있게 마무르는 길이 될까. 그 판단은 각자가 취할 선택의 몫이다.

곽흥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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