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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창]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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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는 흔히 전문직으로 분류된다. 그런데 의사들 중에는 의학이라는 전문분야 외의 것으로 알려진 이들이 더러 있다. 항간에 이름이 많이 거론되는 안철수 교수도 그중의 한 사람이다. 내가 안 교수를 처음 만난 것은 20년쯤 전이었다.

당시 삼십 대 초반이었던 내게 대한의사협회로부터 뜬금없는 연락이 왔다. 기억을 어렵게 되살리면 대한의사협회에서 처음으로 정보전산위원회라는 것을 구성하기로 했고, 전국을 수소문한 결과 겨우 몇 명을 찾아내 연락한다는 내용이었다.

우습겠지만 당시만 해도 컴퓨터에 대한 이해와 취미가 있는 의사들이 드물었다. 모여 보니 처음엔 달랑 대여섯 명 정도였다. 그때 내 옆자리에 앉은 이가 당시 해군 군의관이었던 안철수 교수였고, 그렇게 일 년가량 매달 만났던 것 같다.

생리학을 전공한 안 교수의 첫인상은 매우 겸손하고 수줍음을 타며 말투도 조금 어눌했다. 솔직하고 순수하다는 느낌을 받아서 내가 농담처럼 "안 선생은 사람들과 안 부대끼는 기초의학(생리학)을 하길 참 잘했고, 혼자서 몰두하는 프로그래밍이 적성에 맞겠네요?"라고 했더니 그는 "글쎄요, 그래서 그런지 저를 이용하려는 사람들도 꽤 있어서…"라며 말끝을 흐렸다.

그리고 몇 년인가 지났을 때 그는 이미 벤처기업인의 길에 있었고 나는 우연히 인터뷰 기사를 보았다. 그중에 눈길을 끈 대목이 있었다. 유명 기업인이 된 것을 부러워하고 칭송하는 기자의 말에 그는 "글쎄요, 저는 전공인 의학자로 유명해지고 싶었는데…"라고 대답한 부분이었다. 나는 '결코 잊히지 않는 꿈이 있구나' 하며 언젠가 그 꿈을 이룰 기회가 오기를 바랐다.

비로소 몇 년 전에 카이스트의 교수로 그가 학계에 복귀했을 때, 그리고 그의 모교인 서울대학교로 자리를 옮겼을 때 결국 자신의 꿈을 이룰 기회가 왔구나 생각했고 안 교수가 만족하리라 짐작되니 반가웠다. 그런데 그 후 안 교수는 뜻밖에도 정치적인 일로 더욱 유명해졌고, 신문과 방송을 통해서 내가 지켜본 그는 더 이상 수줍어하지도, 말이 어눌하지도 않았다. 달변으로 여기저기 강연을 다니고 수많은 사람 앞에 나서기를 전혀 주저하지 않는 안 교수의 모습은 그저 놀랍기만 하였다.

비록 그가 원했던 의학자의 길은 아니지만 이제 그는 이미 루비콘 강을 건넜다. 예로부터 작은 의사는 병을 고치고(小醫治病), 보통 의사는 사람을 고치며(中醫治人), 큰 의사는 나라를 고친다(大醫治國)고 하였다. 안 교수가 작은 의사나 보통 의사를 뛰어넘어서 차라리 큰 의사이기를 바라면서 그와 마찬가지로 지금 그의 행보가 안 교수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기를 바란다.

정호영 경북대병원 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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