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곤'(Dogon)으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서울에서 파리를 거쳐 말리의 수도 바마코까지 가는 데만 3일을 잡아야 한다. 바마코에서 12시간 버스를 타고 몹티(Mopti)까지 가는 데 하루가 걸리고, 다음날 4륜 구동차를 빌려 도곤의 텔리(Teli)까지 가는 데 또 하루가 걸린다. 5, 6월의 기온은 50℃까지 치솟는데, 도곤엔 전기도 안 들어와 찬물 한 잔을 마실 수가 없다.
먼 옛날 도곤족은 물이 넘쳐흐르고 초원엔 새파랗게 풀이 자라 양떼와 소떼가 살이 찌는 니제르 강 근처에서 여유롭게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 날, 불길이 치솟아 오르고 아우성이 터지며 평화로운 도곤 땅에 피가 뿌려졌다. 다른 부족이 쳐들어온 것이다. 착하기만 한 도곤족은 고향 땅에서 쫓겨나 정처없는 방랑길에 올랐다. 발길 닿는 곳마다 자기네 땅을 지키려는 부족들의 공격을 받아 하루도 피를 흘리지 않는 날이 없었다. 도곤족은 자연히 사람이 살지 않는 척박한 땅으로 밀려났다.
◆700여년 전 부족 침입으로 이주=사하라사막 언저리엔 그 옛날 지각변동으로 거대한 단층이 형성되었다. 어느 날인가 평평하던 땅이 줄자를 친 듯이 150㎞에 걸쳐 균열이 일어나서 남동쪽이 200~300m나 함몰되어 버린 것이다. 그곳이 바로 반디아가라 절벽, 사하라사막에 닿아 있는 반사막 지역이다. 연말부터 3월까지 하마탄이라는 모래 폭풍이 불어오면 대낮에도 컴컴해지는 곳이다. 하마탄이 끝나고 나면 섭씨 50도까지 치솟는 열파가 몰아쳐 세상 모든 것을 녹여 버릴 듯, 머리 위에서 태양이 지글지글 끓는 곳이다. 사람이 살기엔 너무나 가혹한 이곳까지 도곤족은 밀려온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700여 년 전의 일이다.
하지만 이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다. 붉은 피부에 난쟁이 텔렘(Telem)족이 단층 절벽 사이에 흙집을 짓고 살고 있었던 것이다. 침략자들에게 고향을 빼앗기고 이곳까지 밀려온 도곤족은 이번엔 스스로 침략자가 되어 난쟁이 텔렘족을 쫓아내 버렸다. 텔렘족에 대해선 알려진 것이 하나도 없지만 단층 절벽 사이에 살던 그들의 흔적은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으며, 그때의 일은 전설처럼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올 따름이다.
◆오아시스와 같은 텔리마을 주막집=절벽을 내려와 펄펄 끓는 모래벌판을 지나 텔리마을 주막에 짐을 풀었다. 말이 주막이지, 가뭄에 콩 나듯이 가끔씩 도곤을 지나는 나그네가 이 집 마당이나 평평한 흙지붕 위에서 돗자리 하나 깔고 자고 가는 곳이다. 나그네에게 방을 주는 것도 아니요, 음식을 파는 것도 아니다.
피부는 열기 속에서 익어버렸는지 감각이 없다. 마당 구석 그늘에 축 늘어져 누워 있는데 거구의 집주인이 윗옷을 벗어젖힌 채 남산만 한 배를 흔들며 뒤뚱뒤뚱 다가오더니 악수를 청한다. 일어날 기운도 없어 누워서 팔을 뻗치자 그가 내 팔을 잡아당겨 단번에 일으켜 세우더니 "이리와. 더위 이기는 방법이 있으니" 하고 말한다. 눈이 번쩍 뜨였다. 절벽 아래 어디 냉기가 솟는 동굴이라도 있다는 건가? 이 집 주인이 나를 데려간 곳은 서너 발짝밖에 안 되는 거리에 있는 대문짝 그늘. 그리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독주와 뜨거운 닭찜이다.
그렇지 않아도 온몸이 훨훨 타는데 독주를 붓고 금방 끓여낸 찜요리를 먹는다? 숨이 콱 막히는데 이 집 주인 말이 "뜨거운 것으로 뜨거운 걸 이겨야 한다"는 것이다. 순간적으로 '이열치열'을 외치며 무릎을 쳤다. 피부색깔이 다르고 살아가는 환경이 달라도 인간의 생각은 같다. 이열치열! 배불뚝이 집주인과 마주 앉아 속이 훨훨 타는 포도 찌꺼기로 만든 싸구려 독주 파스티스를 퍼마시고 안주로 뜨거운 도곤식 닭찜을 손으로 집어 먹으니, 이러다 죽는 게 아닐까 겁이 덜컥 날 정도로 온몸이 열기에 휩싸였다. 그러나 앗! 이것이 어쩐 일인가? 더위가 가시는 것이다. 우리 조상의 말과, 주막 주인의 말대로 열로써 열을 제압한 것이다.
◆도곤족이 살아가는 방식=주막 주인의 이름은 '아마티'. 나이가 예순이라고 했다. 도저히 못 믿겠다는 나에게 그는 생년월일이 적힌 신분증명서까지 보여준다. 그는 첫 부인과 사별하고 30대의 하와와, 20대의 아이시타 두 젊은 부인을 데리고 산다. 한 살도 안 된 갓난아기부터 사별한 부인에게서 난 28세 맏아들까지 자식도 여럿 두고 있었다. 마을의 유일한 식수는 지하 20m 깊이에서 퍼 올리는 우물물이다. 높은 기온 때문인지 깊은 땅속에서 퍼 올리는 우물물은 상당히 시원하다. 하지만 많이 마시면 큰일 난다. 필자 역시 더위에 못 이겨 우물물을 몇 사발씩 들이켰다가 설사를 만나 크게 고생했다. 마땅한 치료약도 없이 고생하다가 마을을 떠나올 땐 걸어나올 힘도 없어 마을 사람들이 빌려준 소달구지를 타고 나와야 했다.
7월과 8월 사이 200㎜도 채 안 되는 비가 도곤에 내리면 모래밭에 뿌려놓은 조가 쑥쑥 자라 올라 10월쯤엔 추수를 한다. 조그만 흙창고에 잘라낸 조 이삭을 쌓아두고 한 단씩 꺼내 절구질을 해서 빵을 굽고 죽을 끓여 먹는다. 현재 이곳 반디아가라 절벽 지대에는 약 80개의 크고 작은 부락이 있고, 말리 전역이 이슬람화되어 있지만 유독 도곤족만이 이슬람화되지 않은 채 그들의 고유한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검은 대륙 아프리카에는 53개나 되는 국가가 있고 도곤족과 같은 크고 작은 2천500개의 부족들이 다양한 자기들의 언어로 살아가고 있다. 문자라는 것을 배우기 전부터 구전을 통해 전승되어 온 문화와 생활방법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아프리카에 한번이라도 와서 마음으로 그들을 보고 느낀 사람들은 아프리카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글·사진 도용복 대구예술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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