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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수의 시와 함께] 암스테르담/강인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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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로 휴대폰을 바꿔준다는 전화가 또 왔습니다.

만 원짜리 지폐가 든 봉투를 코앞에 흔들며

신문을 바꿔 보라는 사내가 있습니다.

바꾸고 바꾸고 또 바꾸는 게 유행이고 미덕이랍니다.

냉장고를 바꾸고, 비포에서 애프터로 얼굴을 바꾸고

정당을 바꾸고 심장도 바꾸고, 그러므로 비행기를

바꿔 타는 환승은 당연한 절차.

고흐씨, 빈센트 반 고흐씨

한 시간 반 동안의 무색무취,

당신의 고국 네덜란드와 차단된 거기를 뭐라 할까요,

마드리드에서 인천으로 가기 위한 환승구역.

말썽 부리는 맹장처럼, 시간을 없애기 위해 있는 곳

암스테르담, 암스테르담의 한 점.

가을 잠자리가 시간을 모으는, 죽은 나뭇가지 끝의 한 점.

그때 잠자리는 환승구역에 머무르는 중이었을까요.

당신이 마중 나오지 않아서 섭섭했습니다.

무색무취의 시간을 흘려보내는 암스테르담에서

잠시 동안 당신이 그리웠습니다.

고흐씨, 빈센트 반 고흐씨

겨울이 돼서 당신의 것과 비슷한 모자를 하나 샀습니다.

당신의 별에도 지금 눈이 옵니까,

이제 곧 이 별에서 당신의 별로 바꿔 탈 때가 다가옵니다.

치열한 현실 인식을 긴장된 언어로 엮어내는 강인한 시인의 작품입니다. 시인은 비행기를 갈아타기 위해 한동안을 무료하게 기다려야 하는 환승구역에서 시간과 삶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고 있네요.

그저 '시간을 없애기 위해 있는' 이 환승구역의 시간은 '무색무취의 시간'입니다. 그래서 이 시간은 삶의 노정을 가장 냉철하게 진단할 수 있는 무중력의 시간이지요. 예술을 위해 치열하게 산 그곳 출신 화가 고흐를 떠올린 것도 이 때문입니다.

환승구역이란 우리 삶 곳곳에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삶이 무엇이었으며 앞으로의 삶은 무엇이어야 하는지 진지하게 생각하는 시간이 바로 그것이지요. 이 환승구역에서 매번 삶이 바르게 조정되길 바라는 건 욕심일까요.

시인, 경북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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