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 '열린고용' 학력보다 실력이 우선

"몇 학번이시죠?"

고용노동부에 근무하면서 맡은 업무와 관련해 회의 등에 참석할 때가 많다. 참석자들과 인사를 나누게 될 경우가 있는데, 대부분 연령이나 세대를 알기 위해 "실례지만, 몇 학번이시죠?" 하고 질문을 한다. 그때마다 대답이 막막해진다.

나는 1972년 여고를 졸업하고 그해 대학입시에 실패, 재수를 하던 중 공무원 시험을 치러 1974년부터 고용노동부(당시 노동청)에 들어와 현재까지 근무하고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정상적으로 대학교에 입학했다면 72학번이겠지만 대학교를 가지 않았으니 몇 학번이라고 해야할지 우선 난감하다. 몇 년도에 대학입학을 했는지를 답하지 못하고 잠깐 망설이는 사이 어색한 침묵이 흐른다. 고등학교 졸업 직후 공무원생활을 시작했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대학과 대학원을 마쳤다고 당당히 말하지 못하는 나의 잘못도 크다. 대학을 못간 것이 무슨 큰 잘못이 아님에도 분명한 것은 그 정도의 지위에 있다면 당연히 대학을 졸업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묻는 분들의 저의를 거스르기가 쉽지 않은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괜스레 주눅이 든다는 사실이다.

1970년대 초에 여성들이 대학을 가는 것이 그리 쉽지 않았던 시기에 살았던 나도 이럴진대, 대학진학률이 80%가 넘는 시기에 대학진학 대신 직장을 선택한 이들은 대학지상주의에 빠진 사회분위기로 인해 당당하게 고등학교 졸업자임을 밝히는 것이 더더욱 힘들 것이다. 고졸의 학력이 업무수행이나 승진 등에 결정적으로 장벽이 된 적은 없었고 오히려 직장생활을 하면서 늦게나마 대학과 대학원 다닐 때의 배우는 기쁨은 삶의 활력소가 되기도 했다.

1990년 33.2%였던 대학진학률은 2000년 들어 68.0%로 높아졌고, 2004년에는 81.3%까지 올라갔다. 일본이 49.1%(2004년도), 미국이 63.4%(2004년도)인 점을 고려할 때 우리나라는 과도하게 높다. 통계청에서 발표하는 청년실업률을 보면 일반실업률의 2배가 넘는 7~8%에 이른다. 여러 가지 복합적인 원인이 있겠으나, 주요한 원인 중 하나가 높은 대학진학률, 고학력 때문인 것만은 분명하다.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청년층 생산가능인구의 감소 추세에도 불구하고, 급격한 대학진학률 증가로 고학력 청년인력의 공급과잉이 심화되고 산업수요에 맞는 청년인력 양성 미흡으로 인력수급의 양적, 질적 불일치가 발생한다.

더불어 구직자가 받기를 희망하는 임금과 실제 시장임금 간에 상당한 격차가 존재하는 등 청년층 눈높이 문제가 발생하고, 공무원, 대기업, 공기업 등 소위 '괜찮은 일자리'의 취업경쟁률은 매우 치열한 반면, 중소기업은 여전히 구인난을 호소하고 있다. 청년층 중 53.5%가 일자리와 최종학교 전공이 불일치하고, 대졸 신입사원에 대해 대기업의 80.0%, 중소기업의 50.8%가 업무능력 불만족을 토로하고 있다. 실제 산업현장에서 요구하는 일자리는 고학력자가 가고 싶은 일자리가 아니어서 기업체에서는 일손이 부족한데도 청년실업률은 낮아지지 않는 기업­구직자간 부조화(mismatch)가 심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직접 일자리 현장활동을 나가보면 중소기업은 일손을 구할 수 없어 동남아로 기업을 이전할 기회만 찾고 있고, 생산현장에서는 기술을 배우려는 젊은이가 없어 고령자들이 지금껏 쌓아온 기술이전을 못하고 있다. 그러나 청년들이 생각만 바꾸어 현실을 보면, 대기업은 재직기간이 짧지만 중소기업은 현장에서 기술만 익혀 놓으면 정년까지 보장되고 축적된 기술로 정년을 연장해 일하는 것도 가능하다.

선진국이 되려면 학력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을 못하는 사회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자면 학력에 따른 차이부터 해소하는 사회문화를 만들어 학력보다는 실력이나 경력으로 사람의 가치를 판단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열린고용'은 잠깐의 관심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전 사회적으로 확산되어야 한다.

간혹 당신 주위에 낯선 이들이 있어 연령이나 세대를 알고 싶다고 "몇 학번이세요?"하고 질문 하는 경우가 없었으면 좋겠다.

이기숙/대구지방고용노동청 구미지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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