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미야자키의 색깔있는 일본이야기] 수국과 일본 여성

일본은 곧 장마철이다. 비 오는 날이 많고 눅눅한 습기가 많은 날이 계속된다. 집안일을 하는 사람에게 빨래 말리기는 이 시기의 가장 큰 고민이다. 하지만 이런 고민도 한 걸음 집 밖으로 나와, 둥글고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는 수국(水菊)을 보면 금방 사라져 버린다.

수국은 몇 가지 재미있는 특징을 가진 꽃이다. 산성 토양에서는 청색, 알칼리성 토양에서는 붉은 꽃을 피운다. 수국은 꽃이 피기 시작할 때부터 꽃이 질 때까지 여러 번 색깔을 바꾼다. 그래서 꽃말은 '변덕스럽다'이다. 꽃의 모양은 작은 꽃이 여러 개 모여 하나의 큰 둥근 모양을 만들고 있다. 일본말로 수국의 아지사이는 '모이다'와 '남색'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에서 비롯된 것이다.

'변덕스럽다'는 수국의 꽃말에는 재미있는 역사적인 에피소드가 있다. 현재 수국은 전 세계적으로 분포되어 있으며 유럽에서 품종 개량이 된 것도 있지만, 원산지는 일본이다. 막부시대 말엽에 일본을 방문한 독일의 의사이자 식물학자였던 시볼트(1796~1866)는 수국의 한 품종에 '오타쿠사'라는 학명을 붙였다. 사실 '오타쿠사'는 그의 현지처 이름 '오다키상'을 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일본의 문인들은 이러한 시볼트의 로맨스를 시나 소설로 내놓기도 했다. 꽃말 '변덕스럽다'는 시볼트의 연인 오다키상이 몸담았던 화류계의 유녀(遊女)를 연상시킨다. 오다키상은 단순하게 수국의 품종 이름일 뿐만 아니라 슬픈 일본 여성의 역사를 상징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시볼트가 일본에 온 것은 도쿠카와 막부 말기였다. 도쿠가와 막부는 쇄국 정책을 펴 대외 무역을 제한하고, 일본인의 해외 이동과 외국인의 일본 유입을 금지했다. 그렇지만 당시 조선과의 관계는 계속되었고 대마도 번주(藩主) 소우(宗) 씨가 조선과 도쿠카와 막부 사이를 중계하고 있었다. 서구와의 관계에서는 네덜란드 한 나라에만 개방이 허용되었으며, 네덜란드 선박을 타고 온 사람들의 활동 장소는 나가사키의 인공섬 데지마(出島)의 네덜란드 상관(商館)으로 제한됐다. 시볼트는 독일인이었지만 네덜란드 상관의 의사였기 때문에 일본에 올 수 있었고 '나루타키숙(塾)'이라는 학교를 세우고 일본인에게 서양 의술을 가르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일본의 생물을 조사하고, 식물 표본을 유럽에 가지고 가서 '일본식물지'(日本植物誌)를 간행하는 등 유럽에서 일본학의 성립에 공헌했다.

네덜란드 상관원은 현지 일본인과의 접촉이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매우 지루한 나날을 보냈을 것이다. 그러나 유녀들은 네덜란드 상관에 들어가 영업을 할 수 있었다. 시볼트의 현지처가 된 오다키상은 유녀 신분으로 시볼트와 처음 만났다. 이처럼 유녀를 외국인에게 제공하고, 외국인과 일반 일본인과의 접촉을 금지하는 방식은 막부 말기의 '개국' 때도 있었다. 이 같은 모습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1945년 이후에도 등장하는 일본의 '외교 정책'이기도 했다. 오다키상의 시대에는 유녀들에 대한 대중의 시선이 온화했으나, 세월이 흘러 유녀들의 사회적 위치도 가혹해져 갔다. 수국은 화려하고 상큼하지만 이처럼 슬픈 일본 여성의 역사와 연결되어 있다.

시볼트와 오다키상 사이에는 '구스모토 이네'라는 여자아이가 태어났다. 그녀는 시볼트의 제자와 일본에 온 외국인 의사에게 의학을 배워 일본 최초의 여의사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그러나 혼혈아로 태어난 구스모토 이네의 일생은 파란만장했다. 그녀는 사생아를 낳고 평생 미혼으로 지냈다. 또 메이지 초기 여성에게는 의사 자격이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정식 의사도 되지 못했다. 그러나 일본 여성으로 서양 의학의 길을 개척한 그녀의 정신은 일본 여성사에서 주목받을 만하다.

나가사키를 방문하면, 시볼트의 이름을 딴 많은 시설물과 철도 등을 접할 수 있다. 왜 시볼트가 유명한지를 실감하게 한다. 초여름에 자태를 뽐내는 수국과 함께 시볼트의 주변을 살펴보면 또 다른 역사의 무게를 느끼게 된다.

미야자키 치호/일본학술진흥회 특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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