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출(家出)한 처녀는 술집으로 가고 출가(出家)한 처녀는 수녀원이나 절에 모인다. 가출은 목적 없이 홧김에 '집을 나감'을 말하고 출가는 뚜렷한 목표를 갖고 '집을 떠남'을 이른다. 가출은 일시적이고 어느 정도 귀가를 전제하고 있지만 출가는 종교적 성격이 강해 귀가를 기대할 수 없다.
출가는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 집을 나오는 것이며, 가출은 집을 나오는 자체가 목적이다. 그래서 전자는 허락을 얻은 것이며 후자는 무허가 일탈이라 말할 수 있다. 절집 유머 중에 이런 것이 있다. 가출한 사람은 입산할 때 국립공원 입장료를 내야 하지만 출가하는 사람은 그냥 들어가도 된다.
가출과 출가는 인간 세상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지구의 기후 변동으로 나무와 풀꽃들의 가출 현상이 심각하게 일어나고 있다. 심지어 바다의 물고기들까지 출가를 결심하고 살고 있던 둥지를 버리고 집을 떠나고 있다. 한때 대구경북의 대표 브랜드인 사과는 충청도 쪽으로 밀고 올라갔으며, 대신에 유자, 오렌지를 비롯하여 종려와 광나무 등이 남쪽지방의 새로운 수종으로 뿌리를 내린 지가 한참 되었다.
최근 안용복재단 초청으로 울릉도에 다녀왔다. 애초에는 독도까지 둘러보고 '우리 땅, 독도를 넘보지마'하고 크게 소리 지르고 올참이었는데 마침 풍랑이 심해 배를 띄우진 못했다. 대신에 우리 대경언론클럽 일행들은 빈 시간에 울릉도를 샅샅이 훑어보는 기회를 얻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고무다라이' 아줌마들은 자리돔을 횟감 생선으로 취급조차 하지 않았다. 2년 전인가, 저동에서 내다 버리는 자리돔 한 바가지를 얻어 즉석에서 강회를 쳐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어제 같은데 이젠 ㎏당 2만5천원이다. 자리돔은 제주 해역의 붙박이 생선으로 오랜 세월 동안 제주의 명물로 군림하고 있었다. 그런 자리돔이 독도를 비롯한 울릉도 인근 해역으로 몰려와 해양생태계의 새로운 한 축을 담당하고 있으니 상전벽해가 따로 없다.
최근 국립수산과학원 독도수산연구센터는 독도 주변에 서식하는 자리돔의 DNA를 분석한 결과 제주의 것이 이주해 왔음을 밝혀냈다. 이렇게 되면 제주 자리돔의 울릉도 진출은 가출인가 출가인가 아니면 탈출인가를 규정짓기가 아주 까다로워진다.
제주 자리돔은 아주 맛있는 명품 생선이다. 보기에 작고 못생겼지만 외양을 탓할 그런 물건이 아니다. 자리돔으로 만들어 내는 음식은 물회'강회'구이'무침'조림'젓갈 등 실로 다양하다. 개인마다 선호도의 차이는 있지만 어느 것 하나 맛없는 것이 없다. 나는 유채꽃 필 때 뼈가 덜 여문 자리돔을 뼈와 지느러미째로 썬 물회와 강회를 가장 좋아한다. 항상 머릿속에서 그려지는 제주의 추억은 산행이나 경치보다는 서귀포 보목리의 자리돔 물회가 첫 장에 펼쳐진다.
제주에서 나는 자리돔이라도 모두 같은 것은 아니다. 서귀포 방면의 자리돔은 '모래 생선'이라 작고 부드러우며, 모슬포 쪽의 것은 '뻘 생선'으로 크고 뼈가 강하다. 그래서 남쪽 것은 회로 먹고 북쪽 것은 구이로 먹는다. 그리고 자리돔 강회는 대가리를 잘라내고 키대로 길게 두 번만 썰면 된다. 이때 강회 마니아들은 지느러미와 꼬리를 제거하지 않고 그대로 씹어 먹는다. 뼈와 지느러미 맛이 별미다.
제주 사람들은 물회나 강회를 먹을 때 된장에 찍어 먹는다. 막걸리 한잔 벌컥벌컥 마신 후 몸통에 칼집을 낸 자리돔을 상추에 쌈장을 얹어 한 잎 먹으면 눈알이 확 뒤집어 진다. 알이 송송 밴 자리돔을 날된장에 쿡 찍어 먹으면 참치 뱃살과 바꿔 먹자 해도 고개를 가로로 흔드는 게 자리돔의 참맛이다.
자, 이쯤 해 두고 울릉군 관계자들에게 한마디 부탁의 말씀을 올려보자. 제주의 토종 물고기인 자리돔이 가출을 했건 출가를 했건 독도와 울릉도로 이주해 왔으면 그들을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요즘 좌파들이 배신자라고 욕을 퍼붓는 탈북자들을 우리 정부가 따뜻하게 맞이해 주듯 그렇게 해야 한다. 집을 떠나온 자리돔을 울릉도 명물로 만들려면 부둣가 '고무다라이' 아줌마들을 제주도로 선진지 견학을 보내 회 써는 법과 요리법부터 배우게 해야 한다. 도동항에서 기계로 썰어내는 자리돔회는 살이 문드러져 맛이라곤 없었다.
수필가 9hwa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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