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지러져 검푸르기까지 한
여름 산 짙은 녹음은 차라리
짐승의 무성한 털갈기 같다.
태풍이 치는 밤.
쩌렁쩌렁 우는 그 포효소리를 들은 적이 있는가.
언뜻 보인다.
번갯불 사이로
온 몸을 땀에 흠뻑 젖은 채
대지에 웅크리고 있는 그 거대한
수컷 한 마리.
주체할 수 없는 욕망에
꽃을 잡아먹어, 새를, 숲을 잡아먹어 마침내
씩씩대며 나를 노려보고 있는 그
맹수 한 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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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시인 랭보는 좋은 시인이란 보이는 것에서 보이지 않는 것을 통찰할 수 있는 '견자(見者)'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 시인은 논리적인 탐구의 결과가 아니라 찰나에 사물의 본질을 포착하는 존재입니다.
여름산을 웅크리고 있는 맹수 한 마리로 보는 것 역시 견자의 시선입니다. 일순간에 힐끗 본 이 모습이 우리가 놓치고 있는 여름산의 본질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시를 읽는 순간 여름산이 온몸의 물기를 부르르 털며 벌떡 일어서면 어찌할까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입니다.
시인·경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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