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관련 취재를 위해 지난 6월 말 찾은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시에서는 그때부터 무더위가 시작되고 있었다. 내리쬐는 태양 아래 가마솥처럼 달궈진 도시 곳곳은 열기를 내뿜고 있었다. 바다 건너 멀리 이국에서 온 취재진을 맨 먼저 마중나온 폭염이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곳 사람들의 모습에서는 여유와 활력이 느껴졌다. 상큼한 거리, 잘 정돈된 가로수와 조경, 도심 곳곳에 조성해 놓은 소공원, 분수대와 함께 어우러진 시민들의 밝은 모습에 무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눈은 더없이 시원했다. 유럽을 강타한 금융위기, 미국 월가를 강타한 경기 침체의 그늘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피츠버그는 '절망과 오염의 도시'였다. 1875년 앤드류 카네기가 세운 철강 공장을 비롯해 1천여 개의 공장이 밀집하면서 미국 내 최대 제조업 도시로 성장했지만 1970년대 이후 미 철강 산업의 퇴조로 위기를 맞게 된 탓이다. 1980년대 들어 원가경쟁력을 내세운 포항제철의 공세에 눌려 철강 공장들은 하나 둘 문을 닫았고 융성했던 철강 도시는 녹슨 도시로 전락했다.
대구경북으로서는 대단히 미안한(?) 감정을 가질 수밖에 없는 도시인 셈이다. 포스코를 건설할 당시, 박태준 회장이 벤치마킹을 했고 그 결과 포스코는 세계적인 철강 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급성장한 한국의 제철 산업이 결국 이 도시에 '사망선고'를 내렸기 때문이다.
준비 없이 가만히 앉아있다가 당한 피츠버그는 그 후 수십 년 동안 혹독한 시련을 경험한 후 철강 등 굴뚝 산업에서 나노기술, 첨단의료 산업, 정보기술 등 새로운 전략 산업에 과감히 눈길을 돌렸다. 카네기멜런대와 피츠버그대 등 지역대학을 중심으로 정보기술(IT)과 생명공학기술(BT)에 집중투자해 변신에 성공했다. 지역대학의 경쟁력이 강화되면서 7만여 개의 연구개발 일자리가 나왔다. 이들의 두뇌를 보고 정보기술 생명공학 녹색기술 기업들이 몰려들었다. 특히 피츠버그 사람들은 자기 자신과 도시를 동시에 변모시켰다. 철강 공장에서 해고된 근로자가 대학에서 의료 기술을 익혀서 병원에 취업했고 IT 기술자로 변신하기도 했다.
피츠버그의 성공적인 변신은 대구경북에 가능성과 함께 큰 과제를 던지고 있다.
대구경북 역시 섬유나 기계 일변도의 산업구조가 한계에 다다르면서 '변화하느냐' 아니면 '침체의 늪에 갇히느냐'를 강요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피츠버그는 '미안하고도 참 고마운' 도시다. 변화에 대한 필요성은 물론 변화의 방향까지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IT'BT 도시로 변신에 성공한 피츠버그는 로봇산업을 통해 또다시 변신을 꿈꾸고 있다. 그동안 축적한 IT와 BT를 활용해 로봇 산업에 집중투자하고 있다. 철강 도시에서 IT 도시로, 다시 로봇 도시로 변신을 꾀하고 있는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위세를 떨치고 있는 한국의 IT 산업에 대한 위기감도 새로운 변신을 재촉했다. 카네기멜런대 관계자는 "한국에 두 번 죽을 수는 없지 않으냐. 변화하지 않으면 또다시 20년 전의 악몽을 재연할 수 있다"고 했다.
이미 국방로봇 분야 등 일부 분야에서는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자랑하고 있다. 이 같은 의지에 감동한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지난해 이곳을 방문해 수조원 규모의 로봇 산업 육성 의지를 밝히는 등 피츠버그의 변신을 지지하고 나섰다.
로봇 산업은 대기업은 없지만 IT나 모바일'센서공학 등 관련 기술들이 몰려 있는 지역 실정에 가장 적합한 산업이다. 대구경북에 활로를 제시할 수 있는 산업인 셈이다. 피츠버그의 실패와 성공을 반면교사(反面敎師)의 교훈으로 삼아 로봇 등 새로운 먹거리를 발굴하고 변화에 대한 의지를 다져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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