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선생은 작은 아이도 크게 만든다. 의사도 그럴 수 있을까? 우리 병동을 비난하면서 떠나는 환자나 보호자가 생기면, 호스피스 의사로서의 실력을 의심한다. 큰 의사가 아니어서 그럴지도 모른다는 자책감에도 시달린다. 반대로 떡이라도 해서 다시 찾아오는 보호자가 있으면 가슴이 뿌듯해서 하루 종일 입가에 미소를 띄우곤 한다.
호스피스병동은 일반 입원실과 다르다. 치솟던 혈당치가 정상으로 조절돼 건강한 모습으로 퇴원하는 내분비내과병동이나 급성 맹장염 수술을 하고 방귀가 나와 퇴원하는 활기찬 일반외과병동의 모습을 상상하면 큰 오산이다.
환자의 퇴원은 '죽음'이다. 하루하루 시간이 흐를수록 좋아지기는커녕 더 나빠진다. 한 번 입원하면 마지막까지 같이 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니 사소한 감정의 대립도, 깊숙이 묵혀두었던 가족관계도 속속들이 알게 된다.
호스피스 의사는 90세인 난소암 환자의 72년 전 이야기도 재미있게 들어야 할 때가 있다. 18세 때 했던 첫 결혼 이야기이다. 그토록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그녀에게는 생생한 인생 이야기이다. 왜냐하면 실패한 첫 결혼 때 두고 온 아들을 지금에 와서 뼈저리게 그리워하고 있기 때문이다. 삶의 통증이 있으면 암성 통증도 심한 법이다.
55세 된 젊은 할머니 정희 씨도 있다. 폐암이 골반으로 전이돼 넉 달째 침대에서만 살고 있다. 입원 후 줄곧 며느리가 간병했는데 어린 손자와 손녀가 폐렴으로 입원하는 바람에 요즘은 80세 되신 시어머니가 보살핀다. 더 기막힌 사연은 지난해 25살 된 딸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일이다. 한 번씩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눌 때면 우리는 함께 슬피 운다.
오늘은 나지막한 소리로 "내가 다시 걸을 수 있나요?"라고 차분히 물어왔다. 이제는 걸을 수 없다고 말하는 것도 잔인한 것 같고, 그렇다고 걸을 수 있다는 거짓 희망을 주는 것은 환자를 속이는 일이다. 그녀는 행복했던 자신의 지난날을 그리워하고 부러워했다. 점점 신체 기관들이 기능을 잃는 것이 '말기 암환자가 죽음에 이르는 긴 여정'이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나는 예전에는 참 많이도 남을 부러워했다. 늦게 시작한 의사생활을 비관해 순탄한 길을 걷는 것 같은 친구를 부러워했고, 대학교수가 돼 논문 수십 편을 쓱쓱 써내려가는 후배 의사를 부러워했다. 혹자는 부러움을 통해 인생의 꿈도 생기고 삶의 의지도 생긴다고 한다. 하지만 마지막에는 누구도 부러워하지 말자. 행복했던 자신의 과거조차도, 마지막이 온 것도 견디기 힘든데 부러워하면 병 든 자신을 더 힘들게 할 뿐이다. 부러워하지 말자, 그대여! 아파도 누구보다 당당하게 살아야 한다.
김여환 대구의료원 호스피스'완화의료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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