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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무주 '나제통문' 동서마을, 사투리·생활풍속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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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30-40m 암벽 뚫어 이동로 이용, "일제 강점기에 지금의 규모

김천시 대덕면에서 국도 30호선을 따라가면 김천과 전북 무주군 무풍면의 경계인 덕산재가 있다. 덕산재터널을 지나 10여 분 차로 달리면 나제통문(羅濟通門'사진)으로 불리는 바위굴이 있다. 높이 5~6m, 너비 4~5m, 길이 30~40m의 암벽을 뚫은 통문으로 신라와 백제의 경계 관문으로 알려져 있다. 나제통문은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곳은 삼국시대 신라와 백제의 국경으로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던 전략적 요충지였다.

나제통문을 기준으로 김천 방향인 동쪽은 무산현 또는 무풍현으로 신라땅이었고, 서쪽은 주계현으로 백제땅이었다. 659년(신라 무열왕 6년'백제 의자왕 19년) 신라 김유신의 군사 1만명과 백제 좌평 의직의 3천명이 큰 전투를 벌였다는 기록이 있다. 수적 우위에도 불구하고 번번이 신라군이 패하자 김유신의 부장 비령자 장군이 단신으로 나아가 전사하고 연이어 그 아들 거진이 달려나가 죽은 후에 군사들의 사기가 올라 백제군을 물리쳤다는 유명한 일화가 전한다.

이곳은 통일신라를 거쳐 고려시대 말까지 무풍현의 상주목 개령군(지금의 김천)으로 속했던 경상도 땅이었다. 신라'백제의 오랜 대치로 형성된 때문인지 통문을 중심으로 동서지역은 보이지 않는 문화적 특징을 형성시키기도 했다. 지금도 동쪽 마을과 서쪽 마을이 언어와 생활풍속 면에서 확연한 차이가 난다. 사투리만으로도 두 지역 사람을 구별한다.

그러나 나제통문은 알려진 바와 다르게 삼국시대 뚫어진 굴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지금의 굴은 일제강점기 일본이 인근 금광에서 채굴된 금을 쉽게 옮기고 농'임산물을 신속하게 운반하기 위해 뚫었다는 기록이 무주군청지인 '적성지'에 전한다. 나제통문이란 이름도 1963년 무주구천동 33경을 만들면서 일제 흔적이 있는 '기니미굴'을 바꿔 부르게 됐다는 것이다.

이은영 관광해설사는 "삼국시대 전쟁을 치를 때부터 왕래하는 작은 길이 있었지만, 일제가 사람과 물품의 이동을 쉽게 하기 위해 이를 확장한 것으로 보인다. 문서에는 삼국시대 굴을 뚫었다는 기록은 없다"고 설명했다.

박용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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