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戀愛). 동서고금 전 인류의 화두다. 모든 생물이 발산하는 종족 보존의 본능에 더해 아마도 인간만이 즐기는 행동 양식이 아닐까. 물론 즐거움만 있지는 않다. 엄격한 사회 분위기와 기성세대의 못마땅한 시선에 로미오와 줄리엣은, 성춘향과 이몽룡은 참 많이도 울었다.
요즘 젊은이들의 연애는 자유분방하다. 적극적으로 사랑을 쟁취하는데 필요하다며 '연애의 기술'을 연마하는데 관심을 쏟는다. 이전과 달리 젊음의 특권을 마음껏 발산하는 모습이라 건강하고 멋져 보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진득한 사랑보다는 찰나의 호기심으로 이성을 대하는 일부 젊은이들의 모습에 아버지뻘 가수 태진아는 "사랑은 장난이 아니야!"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요즘 젊은이들 "연애 못하면 루저!"
사랑은 주어지는 운명일까? 사회상을 여실히 투영하는 매체인 대중영화를 보면 요즘 사랑은 쟁취하는 것이다. '작업의 정석'(2005'손예진 송일국 주연)은 이성을 유혹하는 데 능수능란한 일명 '작업남녀'의 좌충우돌 로맨스를 그렸다. '시라노 연애조작단'(2010'이민정 엄태웅 주연)에는 연애에 서툰 사람들의 인연을 맺어주려 '007 영화' 뺨치는 작전을 펼치는 연애조작단이 등장한다. '러브픽션'(2012'공효진 하정우 주연)은 영화 시작 전 상담 전문가들이 극장 무대 위에 올라 관객들을 대상으로 연애 클리닉 이벤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들 영화를 요즘은 '연애코치' 장르로 따로 구분하기도 한다. 사랑을 쟁취하려 불 속이라도 뛰어드는 '감동'보다는 구체적인 쟁취의 방법, 일명 '연애기술'을 관객에게 재미있게 보여주기 때문. 세 영화를 모두 봤다는 직장인 한송이(28'여'경북 포항) 씨는 "옛날 영화는 지고지순한 순정을 다룬다. 사랑을 운명이라 생각해 남녀가 서로 호감을 표시하는데 소극적이고 시간도 많이 걸린다. 아름답기는 하지만 요즘 그대로 따라했다가는 연못남'연못녀(연애 못하는 남녀)가 되기 쉽다"며 "최근 연애코치 영화가 많이 나오고 또 흥행하는 이유는 그만큼 젊은이들이 연애에 적극적이고 관심이 많다는 것"이라고 했다.
요즘 젊은이들에게 연애는 일종의 '스펙'이기도 하다. 최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여성들에게 '결혼하고 싶지 않는 남자 유형'을 물었더니 '무직'을 2위로 꼽았는데 1위가 '연애 경험이 없는 남자'였다. '적당한 나이에도 연애 경험이 없는 남자는 자기중심적이고 여유가 없어 보인다'는 이유에서였다. 한 씨는 "연못남'연못녀를 벗어나 매력남'매력녀가 되려면 결국 연애기술을 익히는 데 관심을 쏟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연애를 책으로 배웠어요
이달 4일 찾은 대구 중구의 영풍문고. 이색 코너가 눈에 띄었다. 코너 이름은 '연애 심리'. 진열대에는 '연애'를 주제로 한 다양한 제목의 책이 꽂혀 있었다. '솔로부대 탈출 매뉴얼' '1초 만에 그를 사로잡는 법' '연애의 신' '최면 연애술' '악마의 연애술' 등의 제목이 눈에 '확' 들어왔다. 책 한 권을 꺼내 살펴봤더니 내용은 이렇게 진행됐다. '연애는 우연과 운명이 아닌 연출이다'고 운을 뗀 다음 '연애도 전략과 기교로 승부하라'며 다양한 연애기술을 알려준 뒤 '진정한 사랑은 없다'고 마무리했다. 또 다른 책은 '다양한 상황에 따른 맞춤형 이성 공략법'을 수십 개 챕터로 나눠 수록하기도 했다.
대부분의 책이 '실전' 연애실용서였다. 이전에 찾을 수 있던 연애 관련 사색이 담긴 책은 찾기 힘들었다. 또 기존 연애실용서가 이성을 대하는 '태도'를 다뤘다면 요즘 실용서는 이성을 유혹하는 구체적인 '비법'을 다룬 것이 차이였다. 한마디로 '연애는 과학'이라며 분석한 다음 '연애는 기술'이라며 각론을 다채롭게 전개하는 식이다. 이를 잘만 따라하면 '연애의 고수'가 될 수 있단다.
책 말고도 연애코치 관련 방송프로그램'인터넷 강의 동영상'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등이 큰 인기를 얻고 있다. 관련 강사나 상담가로 활동하는 연애 컨설턴트도 최근 적잖게 등장'활동하고 있다. 이전에는 싱거운 연애 상담이었던 것이 비법 전수 및 다소 자극적인 사례 보여주기 형식으로 바뀌었다. 대학생 구정태(25) 씨는 "실전 연애에 참고하기 위해 보기도 하지만 순전히 재미로 보기도 한다. 연애 고민 상담 및 분석 코너가 많은데 남의 연애 속사정을 훔쳐보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말했다.
◆'밀당' 즐기고, '썸 타기'로 부담 없이
대표적인 연애코치 종목으로 '밀당'(밀고 당기기)이 있다. 남녀 간의 미묘한 심리 싸움을 줄다리기에 비유한 것이다. 밀당이 요즘 얘기인 것만은 아니다. 과거부터 있었다. 그래서 이전에는 밀당을 극복하며 사랑의 완성도를 높이는 방법을 얘기했다. 하지만 요즘은 '절묘한 상황에 이성에게 튕겨서 안달이 나게 만든 다음 서서히 길들이며 주도권 잡기'와 같은 고도의 밀당 기술을 가르쳐 주고, 또 개발한다. 그러면서 밀당 자체를 '스릴 넘치는' 연애 과정으로 즐기는 법을 알려주기도 한다.
'썸 타기'도 있다. 여기서 '썸'은 섬싱(something)의 준말로 우리말로는 '무언가'이고, 남녀 사이의 '호감'을 가리키기도 한다. 따라서 썸을 탄다는 것은 '남녀 사이에 호감을 즐긴다'는 것이고, 이때 당사자들을 썸남'썸녀라고 한다.
남녀가 서로 호감을 가지다 본격적인 연애에 돌입하는 것이 상식이다. 하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호감 그 자체를 즐기며 연애 돌입 직전까지의 '설렘'만을 즐기는 경우가 많단다. 연애를 시작하면 설렘의 감정은 크게 죽어버리기 때문이란다.
익명을 요구한 30대 초반 미혼 직장인은 "썸 타기의 묘미는 두 가지다. 하나는 여러 명의 이성과 설렘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연애로 진행하고 싶은 이성이 있다면 다른 썸남 혹은 썸녀들과 쉽게 관계를 정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양다리 내지는 문어발 연애가 아니다. 여러 명의 이성과 그저 가볍게 만난 것일 뿐이기 때문에 양심에 찔릴 것도 없다"며 "결혼보다 덜 부담스러운 동거가 젊은이들 사이에 확산되고 있다. 썸 타기도 마찬가지 맥락이 아닐까"하고 털어놨다.
◆연애코치 종결자, '픽업 아티스트'
연애에 관심을 쏟는 요즘 젊은이들의 모습은 그 자체로 건강하고 멋지지만 '즐기기'에 무게가 실린 일부 연애 행태에 우려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대표적인 예가 지난해부터 유행, 사회적으로까지 화두가 된 '픽업 아티스트'다. 이들은 주로 연못남을 대상으로 데이트 매너, 대화기술 등 자신의 매력을 발산하는 방법을 이론과 실습으로 가르쳐주는 신종 직업이다. 영화 '시라노 연애조작단'에 등장하는 연애조작단과 흡사하다.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면 수강료를 받고 다양한 강의를 해주는 강습소나 관련 정보 공유 카페가 수십 개 이상 뜬다. 한 강습소 사이트에 접속해봤더니 이성에게 휴대전화 메시지를 보내는 방법부터 유머나 마술 등 데이트 개인기 능력은 물론 스킨십과 잠자리(!) 비법까지 수강료 5만~10만원의 강의 20여 개에 대해 절찬리 수강 접수 중이었다.
픽업 아티스트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은 극명하게 둘로 갈린다. 연애를 일종의 '카사노바 놀이'로 만든다는 시선이 있다. 반면 픽업 아티스트들은 "취업난에 대학 도서관에서 공부만 하다 청춘을 다 보낸 뒤 여성을 만나는데 서투른 연못남이 많다. 이들의 후천적 매력을 발굴해 이성과 원활한 소통이 이뤄질 수 있도록 심리학 지식과 풍부한 실전 경험을 전수하는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에 대해 대학생 강모(24) 씨는 "픽업 아티스트의 강의 내용을 실전에 그대로 적용해 성공하면 멋진 카사노바, 실패하면 '날라리'가 될 것이다. 위험 부담이 크다. 하지만 행동으로 옮기지 않고 이성을 좀 더 섬세하게 이해하는 소양으로 참고하면 긍정적일 수 있다. 남녀가 서로 다른 별에서 온 것처럼 달라 그 차이를 제대로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의 책 내용처럼 말이다"고 말했다.
황희진기자 hh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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