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의창] 순환(循環)

사람이 환생(還生)을 하면 어떤 삶을 살까? 종교적으로는 가능하나 의학적으로는 불가능한 의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환생을 한다면?'이란 가정을 해서 물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때의 대답은 모두 모범적인 삶의 형태가 나열될 것이다. 나름대로 아쉬웠던 삶을 반성하면서 절대 그런 삶은 살지 않겠다고 다짐할 것이다.

3월은 입학 시즌이다. 새내기들은 새로운 출발을 하는 듯이 마음을 다잡는다. 새로운 환경과 이색의 만남은 호기심을 발동하여 삶에 흥미를 불어넣는다. 이때만큼은 누구도 성실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그래서 '처음처럼'이라는 말도 생긴다. 처음처럼만 한다면 성공하지 못할 사람도 없고 이루지 못할 일도 없다.

정년을 맞이한 이때 의예과에 입학하는 새내기들에게 '참 의사로서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처음에는 당황했다. 학교의 배려로 얼마간 석좌교수로서 학교와 병원생활은 더 하겠지만 어찌 되었건 의사생활은 거의 끝물이 아닌가. 꼭 46년의 후배들을 붙잡고 이야기를 했다. 환생한 듯이 지내 온 의과대학 학창시절과 의업의 과정에서 아쉬웠던 점들을 이야기하고 새내기들이 이렇게 했으면 하는 점을 부탁했다.

꿈들을 이야기하는 것은 초봄이 좋다. 날씨는 차가워도 겨울과는 빛이 다르다. 스치는 바람도 결이 다르다. 겨울의 쌀쌀맞은 손바닥 감각보다 다정하고 보드라운 손등의 감촉이다. 저 연한 초록의 빛을 띤 새싹이 땅을 뚫고 나오는 봄, 새내기들도 그들을 닮았다. 솜털이 얼굴에 가득하고 복숭앗빛 뺨을 가진 그들을 붙잡고 미래를 이야기하는 것은 가슴이 벅찬 일이다.

결국 의사란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업이다. 인간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인간을 해체해 놓고 부서지고 고장 난 부위를 고치는 데에만 온통 신경을 써왔다. 병리과 교수가 이야기했다. 진단을 할 때는 풍경이 중요하다고. 세포의 모양은 두 번째라고.

그렇다. 의사도 인간 전체를 보아야 한다. 같은 질병을 가진 환자라도 그 병에 대한 반응과 감정은 천차만별이다. 문학책도 읽어야 하고 철학책도 읽어야 하며, 중국 고전도 읽어야 하고 사회과학 책도 읽어야 한다. 그래야 병소(病巢)만 보는 의사가 아닌 인간 전체를 보는 의사가 된다.

너무 일찍 목표물에 도달한 듯한 망상을 버리라고도 했다. 목표물의 높이도 천차만별이다. 동네 야산의 봉우리도 있고 에베레스트 산의 정상도 있다. 세계 정상의 꿈을 가지고 육십대까지 질주하기를 부탁했다. 너무 일찍 정상에 서면 내려가는 길이 아득하다. 올라가는 것은 힘들어도 내려가는 것은 비참하다. 내려가 본 사람은 그것을 안다.

임만빈 계명대 동산병원 신경외과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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