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암칼럼] 내다버려야 할 건 개(犬)가 아니다

모스크바 길거리에서는 자동차보다 개를 더 조심해야 한다고 한다.

한적한 길목에 혼자 걸어가다가는 자칫하면 개들의 습격을 받기 때문이다. 모스크바 시내에 제멋대로 돌아다니는 '버려진' 개는 약 1만 마리. 수십 마리씩 조폭처럼 구역을 나누어 쓰레기 등 먹을거리가 많은 부자 동네 지역을 차지하려는 패싸움도 하고 영역에 접근하면 행인들도 무차별 공격한다.

애완견 또는 반려견(伴侶犬)으로 사랑받다가 어느 날 버려지는 유기견(遺棄犬) 문제가 러시아나 유럽뿐 아니라 이제는 우리의 문제가 되고 있다.

대구지역 유기견도 지난 3년 새 20%나 늘어 6천여 마리를 넘어섰다고 한다. 버려진 개들 중 운 좋게 동물보호소에 잡혀와 새 주인에게 분양되는 녀석은 복 받은 녀석이지만 재분양 희망자가 없으면 안락사(安樂死)당하게 된다. 대구시청의 경우 버려진 유기견 관리에 드는 비용만도 연간 1억 3천900만 원. 가뜩이나 시 재정이 넉넉지 않은데 강아지 뒤치다꺼리에까지 헛돈을 써야 하는 판이다. 정부가 유기견을 줄여보겠다고 짜낸 '반려동물 등록제'도 아직은 실효를 못 거두고 있다.

대구시내도 당장 4월부터 동물 등록제가 시행된다. 생후 3개월 이상 된 애완견을 기르는 사람은 의무적으로 등록해야 하는 제도다. 개 주인은 구청에서 등록번호를 받은 뒤 동물병원에 가서 마이크로칩을 개 몸 속에 넣거나 별도의 무선식별장치나 인식표를 몸 바깥에 부착해야 한다. 개를 잃어버리면 등록번호를 추적해 주인에게 돌려주는 방식이다. 그러나 내다버릴 작정으로 인식표를 떼버리고 내버리면 대책이 없다. 단속 인력도 마땅찮고 따끔한 처벌 규정도 없다니까 속 빈 시책으로 흐지부지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되면 대구의 버려진 개들도 언젠가는 마릿수가 더 불어나고 세력이 커지면 모스크바 개들처럼 떼 지어 다니며 사람을 공격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개, 사람들은 '개'를 두고 '개 같은…'이란 표현으로 하찮은 존재로 흔히 비하한다. 그러나 개들은 개들대로 요즘 사람들 하는 짓거리들을 보며 저들끼리 '사람 같은…'으로 비하할지도 모른다. 개도 개 나름이다. 세타 같은 사냥개는 100m 떨어진 나무에 15분 전에 앉아 있던 새의 냄새를 쫓아 사냥꾼을 안내할 정도로 후각이 뛰어나다. 공항에서 밀수 마약 탐지하는 견공들은 기본이고 2차 대전 때 러시아 군용 개들은 지뢰 탐지를 도맡았었다. 스위스는 눈사태 매몰 인명구조 탐지도 개가 한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가스회사는 가스 탐지도 개를 훈련시켜 활용한다. ?딩고'라는 가스 탐지 개는 1970년대 당시 월급을 20만 원을 받았을 정도다. 잘났다는 인간은 1천 명당 1명꼴로 후맹(嗅盲) 환자란 통계도 있다. 의리나 충성은 제쳐 두고라도 코만 따져도 견권(犬權)을 함부로 무시할 게 못 된다. 일본 도쿠가와 막부시대에도 개를 내다버리지 못하게 하는 법령을 만들어 모든 버려진 개를 정부가 사육했다. 지금의 도쿄 시내 외곽에 33㏊(10만 평)의 개집이 생겨날 정도였다니 안락사와 자연사(自然死)라는 방법만 달랐지 '내가 아쉬울 땐 챙기고 즐기다 버리는' 인간의 변덕과 배신은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다를 것 없는 셈이다. 강아지 호텔에 강아지 미용실, 강아지 마사지실까지 생겨나는 세태도 개가 단순히 '도둑이나 지키는' 존재가 아니라 인간의 '고독을 지키는' 상향된 존재로 바뀌어가고 있음을 말해준다.

그런 견공들을 가볍게 내다버리는 유기견 실태를 보면서 이 시대에 정작 내다버려야 할 것들은 개가 아닌 그 무엇일까를 생각해보게 된다.

개를 묘사한 어느 작가의 풍자에 대입시켜 생각해보자.

'개란 제 영역만 편향되게 지키는 일에 사력(死力)을 다하고(종북 이념에 빠져 국익을 외면하는 자들), 덮어놓고 배타(排他)를 일삼아 상대를 향해 짖기를 잘하며(여'야 간 당리당략으로 식물정부까지 만들어내는 정치판), 뼈다귀를 만나면 으르렁거리며 싸우고 한술 밥에도 꼬리를 쉽게 흔들고(정치자금'로비와 스포츠 승부조작 부패), 한 덩이 고기에는 아양을 떤다(뇌물과 전관예우 억대연봉). 쓰다가 보니 개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자화상 같아서 붓이 절로 멈추어진다.'….

-버려진 개들이 짖는다. 진짜 내다버려야 할 그들을 향해. 멍-멍-멍-.

김정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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