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꼬마 녀석들 추운 줄도 모르고 언덕 위에 모여서/ 할아버지께서 만들어 주신 연(鳶)을 날리고 있네./ 울먹인 연실에 내 마음 띄워 보내 저 멀리 외쳐 본다./ 하늘 높이 날아라. 내 맘마저 날아라. 고운 꿈을 싣고 날아라♬'
1979년 대학가요제 금상 곡이다. 이 노랫말처럼 하늘을 날고 싶은 욕망을 가진 인류가 처음 그 꿈을 실어 바람에 날려 보낸 기구가 연이다. 연날리기는 정월 대보름 무렵에 즐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민속놀이다.
◆연 이야기
우리나라의 연은 원래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그러다가 점차 민속놀이와 결합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연 날리는 시기도 농경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연날리기는 정월 대보름을 앞두고 절정을 이룬다. 정월 대보름날 밤에 달을 보며 소원을 비는 등 달맞이를 한 후 각자 띄우던 연을 가지고 나와 '액막이 연'을 날리는 풍속이 있다.
액막이 연이란 연에 '액'(厄) 자 한자를 쓰거나 '송액'(送厄) 또는 '송액영복'(送厄迎福)이라는 액을 막는 글을 쓴 후, 자기의 생년월일이나 성명을 적어 연줄을 끊어 하늘로 날려 보내거나 불에 태워버리는 것을 말한다. 이 풍속은 연에 액을 실어 날려 보내거나 불에 태움으로써 한 해의 액운을 막아보자는 민속신앙이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 기복 연도 있다. 연에 한 쌍의 원앙새나 박쥐 등의 그림을 그린 뒤 연을 날림으로써 한 해의 복을 기원하는 한국의 전통민속이다. 원앙새는 부부의 정을 상징하는 것으로 부부의 정이 돈독하길 기원하면서 그려 넣는다. 박쥐의 한자인 복(輻)은 행복을 의미하는 복(福) 자와 발음이 같아서 박쥐를 그려 넣음으로써 행복을 기원했던 것으로 보인다.
연을 날리는 시기는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음력 섣달부터 정월 보름 사이로 고정되었다. 농사에 지장을 줄 수 있는 농번기를 피해 농한기에 연을 날렸던 것으로 보인다. 정월 보름 이후에도 연을 날리면 '고리백정'(고리짝 같은 물건들을 만들어서 생계를 유지하던 사람들)이라고 욕을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역사 속의 연
언제, 어느 나라가 처음 연을 만들어 날렸는지 그 유래에 대해서는 정확히 밝혀진 바 없다. 우리나라 연의 역사를 살펴보면 '위지동이전'에 고조선시대 동예의 무천, 부여의 영고, 고구려의 동맹같은 제천의식 때 온 나라의 백성들이 제를 지내고 신단 앞 광장에서 온갖 가무와 기예와 오락으로 즐겼다는 기록이 있다. 이를 바탕으로 제천의식이 끝난 후 기예와 오락의 행사로 하늘을 향해 연 놀이를 하지 않았나 하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문헌에 나타난 최초의 기록은 삼국사기(三國史記) 열전(列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신라시대 때 선덕여왕이 승하한 후 진덕여왕이 즉위한 원년(647년) 비담(琵曇)과 염종(廉宗)이 "여왕은 정사를 잘 해 나갈 수가 없다"는 이유로 군사를 일으켜 왕을 축출하려 하였다. 이때 김유신 장군이 반란을 평정하기 위해 연을 만들어 전략적으로 이용했다는 내용이 있다.
고려시대 말엽(1374년) 최영 장군도 탐라국 평정 때 군사를 연에 매달아 병선(兵船)에 띄워 절벽 위에 상륙시켰으며, 연에 불덩이를 매달아 적의 성안으로 날려 보내 성을 점령했다는 기록(동국세시기)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세종대왕(1455년) 때 남이 장군이 강화도에서 연을 즐겨 날렸으며, 임진왜란 당시 충무공 이순신 장군도 섬과 육지를 연락하는 통신수단과 작전 지시의 방편으로 연을 이용했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이순신 장군은 당시 삼도 수군통제사로 재직하면서 왜적이 쳐들어올 때 흩어져 있는 군사들의 집결지를 알리기 위해 암호를 담아 연을 날렸다고 한다. 특히 영조대왕은 연날리기를 좋아하여 장려하고 즐겨 구경했다고 한다.
근대에 들어 1956년 한국일보사가 주최한 제1회 전국연날리기 대회가 서울에서 개최되었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도 대회장에 나와 관전도 하고 연도 날리며 연에 대한 많은 관심을 나타냈다. 이때부터 연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점차 높아져 연을 수집하거나 제작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되었다.
◆연 날리는 방식
연날리기는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풍속은 아니다. 그래서 연의 모양과 연 날리는 방식이 나라마다 다르다. 중국, 일본, 태국의 연날리기는 연실을 많이 풀어 높이 띄우는 데 중점을 둔다. 그 모양도 물고기 연(魚鳶), 새 연(鳥鳶), 용 연(龍鳶), 사람이나 동물 모양의 연 등 연의 그림이나 모양에 관심을 둔다. 그래서 연싸움을 하거나 연을 자유자재로 조종하기 어렵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의 연은 그 형태와 구조 면에서 다른 나라의 연과 달리 바람과의 관계가 매우 과학적인 구조로 되어 있다. 우리나라 대표 연은 직사각형 모양의 방패연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나라의 연에는 없는 독특한 '방구멍'이 있다. 연에 방구멍을 내 맞바람의 저항을 줄이고, 뒷면의 진공상태를 메워주기 때문에 연이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뿐 아니라, 강한 바람을 받아도 잘 빠지게 되어 있어 웬만한 강풍에서도 연이 잘 견딘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방패연은 연 날리는 사람의 조종에 따라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는 기동력을 갖게 되어 있다. 상승과 하강, 좌우로 돌기, 급상승과 급하강, 전진과 후퇴를 할 수 있다. 또한, 얼마든지 높게 날릴 수도 있고 빠르게 날릴 수도 있다. 이러한 기능적 특성 때문에 연싸움(연줄 끊기)도 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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