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미 FTA 1년 오렌지 웃을때 견과류 울었다

체리 등 싸졌지만 소비자 시큰둥…명품 가격 올려 FTA 기대감 배신

15일 대구 한 대형마트. 한 개 500원에 판매하는 미국산 오렌지 앞에 손님들이 구름같이 몰렸다. 가격이 저렴해 딸기 같은 제철 과일보다 찾는 사람이 훨씬 많았다. 주부 임수경(37) 씨는 "지난해만 해도 하나에 800~900원 정도 했던 것 같은데 최근 들어 가격이 많이 내려가 오렌지를 많이 사고 있다"며 "다른 과일들은 가격이 많이 올라 상대적으로 더 싸진 것 같다"고 말했다.

15일로 한'미 FTA 발효 1년을 맞았다. 하지만 FTA 이후 대미 무역흑자는 39% 증가했지만 소비자들이 느끼는 물가 인하 효과는 적었다. 일부 품목은 눈에 띄게 가격이 내려갔지만 오히려 오른 품목도 있어 소비자들은 FTA 효과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2011년 7월 발효된 한'EU FTA도 소비자들이 느끼는 효과는 미미했고, 유럽산 유명브랜드들은 FTA와 무관하게 계속해서 가격을 인상했다.

◆미국산 과일'와인이 FTA 최대 수혜품목

정부는 한'미 FTA 1주년을 맞아 각종 통계를 통해 FTA 효과를 강조하고 있다. 지난 1년간 대미 수출 비중이 커지고 수출 증가세도 호조를 보였다는 것. 관세청에 따르면 한'미 FTA 발효 이후 올 1월까지 대미 수출액은 537억달러로 전년 대비 2.67% 증가했고, 수입액은 390억달러로 전년 대비 7.35% 줄었다.

소비자들이 느끼는 효과도 있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이달 14일 기준 미국 및 유럽산 22개 제품의 가격을 분석한 결과, FTA 체결 전과 비교하면 15개 제품의 가격이 하락했다.

한미 FTA로 관세가 인하된 품목 13개 중에서는 9개의 가격이 내려갔다. 키친에이드 냉장고 가격은 한'미 FTA 발효 전 550만원에서 현재 520만원으로 5.5% 떨어졌다. 미국산 승용차인 포드 링컨MKS는 5천800만원에서 5천395만원으로 7% 하락했다.

한'미 FTA 효과의 대표적 품목은 미국산 과일이다. 체리(―48%)'오렌지(―17%)'자몽(-23%)'레몬(-15%) 등은 가격이 크게 떨어졌다. 여기에 이번 달부터 8월까지 계절관세가 적용되는 오렌지는 관세가 50%에서 30%로 떨어진다. 체리는 관세 24%가 아예 사라지면서 수입이 급증했다. 과일류는 관세 감축에 따라 체리(80.0%)'레몬(74.2%)'오렌지(35.9%) 등의 품목에서 수입이 증가했다.

미국산 와인도 FTA 수혜 품목이다. '로버트 몬다비 까베르네 소비뇽'의 경우 FTA 전 7만8천원에서 현재 6만9천원으로 가격이 11.5% 내렸다. FTA 발효 후 관세 15%가 철폐된 와인은 지난 11개월간 수입액이 54.5%나 늘었다.

한'EU FTA로 관세가 인하된 품목 9개 중에서는 6개 품목의 소비자 가격이 하락했다. 테팔 전기다리미(FV9530)는 지난해 7월 1일 13만6천원이었지만 지금은 10만원이며 유럽산 와인 '솔라티오 모스카토 다스티'는 같은 기간 1만9천500원에서 1만5천원으로 23.1% 인하됐다.

◆관세 인하에도 가격 오른 품목 많다

하지만 소비자들이 느끼는 FTA 혜택은 일부 품목에 그치고 있어 체감효과는 크게 떨어진다. 관세인하율이 높은 아몬드와 호두는 가격이 아예 내리지 않았거나 하락폭이 적었다. 관세는 낮아졌지만 주산지인 캘리포니아 지역의 작황이 부진한데다 견과류 수요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관세율이 8%에서 4%로 떨어진 자동차는 포드와 크라이슬러, 캐딜락 등 미국 차보다 미국에 공장을 둔 일본, 독일 업체들의 제품 가격 인하가 컸다. 미국에서 생산된 도요타 캠리는 FTA가 발효되기 전 3천490만원에서 3천370만원으로 가격이 3.5% 낮아졌다. BMW의 미국산 SUV 차량인 X3와 X5도 각각 2.7%, 8% 싸졌다. 하지만 벤츠ML 클래스처럼 신모델 출시와 옵션 강화를 내세워 오히려 가격을 올린 경우도 많았다.

유통전문가들은 관세 인하로 수입원가는 떨어졌지만 유통구조의 독과점으로 가격이 쉽게 내려가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여기에 일부 유명 수입 브랜드들은 관세 인하와 환율 하락 효과에도 명분 없는 가격 인상을 단행하고 있다.

프랑스 브랜드 루이뷔통은 이달 6일 일부 제품 가격을 0.8~6% 올렸고, 앞서 1월에는 에르메스가 대표 제품인 '켈리 35' 가방을 998만원에서 1천53만원으로 인상했다. 구찌도 일부 인기 핸드백을 4%, 지갑을 5~11% 인상했다. 이들 브랜드가 가격을 올리면서 다른 유럽 수입브랜드들도 가격 인상을 고려하고 있다. 2011년 7월 한'EU FTA가 발효되면서 가방에 붙었던 8%의 관세는 없어졌고, 화장품의 8% 관세도 5년간 단계적으로 철폐되고 있지만 소비자들은 이런 효과를 전혀 느낄 수 없는 셈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FTA 효과를 물어보면 실질적으로 느끼고 있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며 "한'미 FTA 1주년을 맞아 유통업체별로 다양한 이벤트를 펼치면서 일시적인 인하 효과를 느낄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정부의 적절한 관리로 소비자들이 FTA의 수혜자가 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봄이기자 bo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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