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겨울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를 기다릴 때면 얼른 집으로 돌아가 체셔를 안고 싶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후끈거리는 열기를 뿜어내는 난로나 전기장판처럼 추위를 단번에 가시게 하진 않지만, 고양이의 그 몽실거리는 감촉과 따뜻한 체온이 내 품에 느껴지면 어둡고 추운 겨울밤 거리를 홀로 걸어오며 얼어붙었던 내 마음까지 서서히 녹아내리기 시작한다. 체셔가 워낙 안기는 것을 싫어하기에 안고 있는 시간은 불과 몇 분 안 되지만 특히나 겨울이기에, 그 잠깐의 포옹은 집에 돌아갈 때면 매번 기다려지는 순간이다.
이런 짧은 포옹이 지난 7년 동안 늘 지속되었던 것은 아니다. 체셔가 7년 동안 쭉 나와 함께 지냈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학업과 직장 때문에 여기저기 옮겨 다니는 동안 짧게는 한두 달에서 길게는 반년 정도까지 체셔와 떨어져 지내곤 했다.
반려동물과 떨어져 지내는 것은 가족과 떨어져 지낼 때의 느낌과는 또 달랐다. 처음 부모님과 떨어져 지내게 되었을 때, 성년이 된 나이었지만 늘 부모님과 헤어질 때면 눈물이 글썽거리곤 했다.
홀로 지내는 것이 힘들지만은 않았지만, 가끔 혼자 지내는 것이 서글퍼질 때도 있고 적적하고 그리울 때도 있었다. 이에 비하면 체셔와 떨어져 지내는 것은 가족과 떨어진 것만큼 힘들지는 않았다. 혹시나 체셔가 나를 잊어버릴까 하는 걱정 이외에는 내가 체셔와 떨어져 지내는 동안에도 나보다 더 체셔를 아끼고 신경 써주는 부모님이 쭉 체셔와 함께 지내고 있었기에 오히려 안심이 됐다.
내게 이상한 현상들이 일어났다. 체셔와 떨어져 지낼 때면 나에게 묘한 착시현상이 생겼다. 분명 함께 지내고 있지 않음에도 집에 들어가면 어디선가 나타나 스윽 몸을 비비고 갈 것만 같은 착각에 빠지는 것부터 시작해서 집안 곳곳에서 체셔가 보였다. 탁자에서 밥을 먹거나 컴퓨터를 하기 위해 앉아 있을 때면 무언가 다리를 스치고 지나간 듯한 느낌이 났다. 마치 어디선가 체셔가 나타나 통조림을 달라고 조를 것만 같았다.
또 어디선가 들리는 부스럭거리는 소리는 체셔가 장난감을 가지고 놀며 내는 소리인 것만 같았다. 때로는 체셔의 목소리가 환청으로 들리기도 했다. 집 밖에서 들리는 낯선 고양이의 목소리일 수도 있고, 다른 기계음일 수도 있었겠지만 마치 체셔가 내 옆에서 말을 거는 듯해서 깜짝 놀라 돌아보곤 했다. 이렇게 평소 체셔가 하던 사소한 행동들이 체셔가 없는 동안 하나하나 내게 찾아와 체셔의 존재감을 일깨워주었다.
사막에서 갈증에 허덕이는 사람에게 신기루처럼 오아시스가 보인다고 한다. 물론 신기루는 빛의 굴절과 같은 과학적인 현상으로 인하여 일어나지만, 거기에 빗대어보면 체셔가 없다는 것이 내 마음을 허전하게 만들어 신기루와 같은 착시현상을 불러오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주위의 얘기를 들어보면 이런 착시현상은 나뿐만 아니라 잠시 반려동물과 떨어져 시간을 보내는 다른 반려인들에게도 종종 찾아온다고 한다. 이렇게 반려동물의 빈자리에 나타나는 착시현상은 어쩌면 자신이 키우던 반려동물의 존재감을 입증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평소엔 자연스레 겪고 있던 반려동물의 목소리나 체온, 감촉이나 행동들이 반려동물의 빈자리를 통해서 그만의 매력이란 걸 깨닫게 되고 더할 나위 없는 그리움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체셔도 그 녀석만의 은근한 매력으로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매번, 내가 체셔와 떨어져 있을 때면 어김없이 나에게 '고양이 신기루'를 일으킨다.
장희정(동물 애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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