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동해의 窓] 호미곶 돌문어

6학년 한 녀석이 내 옆구리를 '툭' 치며 도망가다가 문득 돌아섰다. 뭔가 할 말이 생각난 모양이었다.

"아 참! 선생님, 더듬발이 갈래요?"

"더듬발이? 그게 뭔데."

"아이쿠 참, 선생님이 그것도 몰라요?"

나를 영 무시하는 말투였다. 호미곶에 와서 모르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일일이 아이들과 이웃 할머니들의 도움을 받는 처지에 녀석의 태도를 시비할 수는 없었다.

"그래. 그 더듬발이가 뭐꼬?"

"약속부터 하세요. 갈 거예요. 말 거예요."

아하, 이 녀석. 나를 완전히 하수로 보고 있었다.

"알았어. 갈 테니까 설명이나 해 봐."

"밤에 돌문어 잡으러 가는 거요. 플래시 들고 까꾸리개 가면 돌문어가 나와 있다고요."

물에 사는 돌문어가 갯바위에 나와 있단다. 당장 가고 싶었다. 앞뒤 살피지도 않고 서둘렀더니 녀석이 또 실실 웃으며 하는 말이"기다리세요. 아무 날이나 가는 줄 아세요? 고요한 날 제가 연락할 게요."

'돌문어' 먹을 줄만 알았지 고요한 밤 슬금슬금 뭍으로 기어오른다는 이야기는 처음 들었다. 호미곶 바다는 나에게 더듬발이 기회를 쉽게 내어주지 않았다. 잠잠하다가도 해가 지면 바람이 창문을 흔들어댔다.

그러고 보니 요즘 호미곶 곳곳에는 돌문어 통발 천지다. 호미곶은 돌문어가 뭍으로 기어오를 만큼 우리나라 최대의 돌문어 산지다. 통통배로 30, 40분 나가면 한류와 난류가 만나는 그야말로 청정한 바다에서 돌문어가 산다. 호미곶을 휘감아 도는 세찬 물살 속에서 갯벌이 아닌 갯바위의 틈과 틈을 오가며 살아가기 때문에 힘이 몹시 세다. 그러므로 육질이 단단하여 삶아 놓으면 매우 고소하고 쫄깃쫄깃하다. 색깔도 곱지만, 단맛과 감칠맛이 일품이다. 이는 타우린, 글리신과 베타인, 오메가3 지방산이 많이 함유되어 있기 때문이란다. 특히 호미곶에는 민물이 섞여들지 않기 때문에 그야말로 문어다운 맛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셈이다.

4월 27, 28일 호미곶에는 돌문어 축제가 있다. 뭍으로 올라온 돌문어를 제대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호미곶 돌문어 맛을 한 번 보고 난 뒤에 녀석과 더듬발이에 나서야겠다.

김일광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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