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9년 프랑스 대혁명은 자유, 평등, 박애를 이념으로 인류사의 큰 진전을 이룩했다. 그러나 그것은 남성만을 위한 혁명이었을 뿐 여성은 철저히 도외시되었다. 혁명에 큰 영향을 미친 장 자크 루소조차 명저 '사회계약론'을 통해 여성은 남성에게 복종하도록 창조되었다고 주장할 정도였다. 올랭프 드 구주는 여기에 반기를 들었다.
1748년 오늘, 시골 귀족과 세탁부 어머니 사이의 사생아로 태어난 그녀는 열여섯 살에 나이 많은 남자와 결혼해 아들 하나를 낳았다. 남편이 죽은 후 파리로 가 사교계 문사들과 교류하며 흑인 노예제에 반대하는 희곡이나 여성의 이혼권을 옹호하는 글을 써 약간의 명성을 얻었다. 그 사이 많은 남자의 구애를 받았지만, 결혼은 거부했다. 그녀는 혁명을 희망과 기쁨으로 반겼으나 평등권이 여성에까지 확대되지 않는 것을 보고 곧 환멸을 느꼈다.
이에 혁명의 '인권선언문'에 빗대어 '여성권선언문'을 썼고 성적 평등 결혼을 주장한 '사회계약론'을 써 루소를 꼬집었다. 결국, 그녀는 '성별에 적합한 덕성을 잃어버린 사람'이라는 올가미를 뒤집어쓴 채 45세 때인 1793년에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를 공격했다는 이유로 처형당했다. 단두대에 오르기 전 그녀는 "여성이 사형대에 오를 권리가 있다면 의정 연단 위에 오를 권리도 당연히 있다"는 말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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